[당신은 어른입니까 13] 바람읽기
― 어떤 보금자리, 어떤 배움자리, 어떤 꿈자리
바람맛을 느낍니다. 이웃집 할매가 쓰레기를 태울 적에는 쓰레기내음 실린 바람맛을 느낍니다. 봄꽃이 피어나는 따사로운 봄철에는 봄꽃가루 살포시 내려앉은 봄꽃바람맛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람내음을 맡습니다. 이웃집 할배가 논이랑 밭에 농약을 뿌릴 적에는 우리 집 마당에까지 농약내음이 바람 따라 흘러듭니다. 가을열매 무르익는 가을철에는 열매와 곡식이 익으며 나누어 주는 고운 내음을 바람결 사이사이 누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봄에 어떤 바람을 마실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여름에 어떤 바람을 마실까요. 도시에서 살거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가을에 어떤 바람을 맛볼까요. 시골에서 지내거나 시골로 나들이를 가면, 겨울에 어떤 바람을 맛보려나요.
보금자리는 배움자리입니다. 배움자리는 삶자리입니다. 삶자리는 꿈자리입니다. 꿈자리는 사랑자리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곳, 그러니까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배웁니다. 식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배움이요,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 또한 배움이에요. 즐겁게 배울 수 있기에 보금자리를 틀며 살지요. 보금자리를 틀며 살아가는 곳에서 앞으로 하루하루 누릴 꿈을 키우고, 꿈을 키우노라면, 이 꿈을 이루는 동안 나눌 사랑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낳기 앞서 어른인 나는 어디에 집을 마련해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아이들을 낳고 나서 어른인 나는 어떤 집을 어떤 곳에 두고는 고향마을로 삼을 때에 기쁠까요.
사람은 누구나 바람을 마시면서 숨결을 잇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숨결을 잇지만, 밥에 앞서 물을 마시고, 물에 앞서 바람을 마셔요. 곡식을 끊으며 백 날 넘게 숨결 건사할 수 있고, 물을 끊어도 퍽 여러 날 숨결 건사하지만, 바람을 끊으면 1분조차 건사하지 못해요. 사람들 몸은, 또 벌레와 짐승과 풀과 나무 모두 바람이 없으면 1분조차 살아남지 못합니다.
바람을 더럽히는 짓이란 스스로 죽으려는 짓이며, 이웃과 동무 모두 죽이려는 짓입니다. 바람을 보살피는 손길이란 스스로 살아가려는 몸짓이면서, 이웃과 동무 모두 살리려는 사랑입니다.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는 일은, 그저 돈을 버는 농사짓기조차 아니에요. 농약 때문에 풀과 흙도 망가지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망가져요. 농약내음 잔뜩 밴 바람을 마신 사람은 몸이 아프고, 죽을 수 있어요. 자동차를 달리면 더 빨리 간다지요. 그런데 자동차 달릴 적마다 배기가스 잔뜩 뿜어요. 배기가스를 마셔 보셔요. 숨이 막히고 갑갑해요. 자동차 물결치는 커다란 도시는 사람들 스스로 죽으려는 꼴이면서, 이웃과 동무를 조금도 안 살피는 모양새예요. 자동차를 타야 할 때에는 탈밖에 없지만, 자동차를 줄일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자동차하고 헤어질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숨을 쉬거든요. 그래야, 숨결을 살리거든요. 그래야, 삶을 사랑하거든요.
바람을 읽어요. 맑은 바람을 읽어요. 맑게 함께 나눌 바람을 읽어요. 바람을 지키고, 바람을 아끼며, 바람을 돌보는 길을 읽어요. 서로서로 즐겁게 바람을 마셔요. 꽃바람을 마시고, 나무바람을 마셔요. 민들레꽃바람을 마시고, 팽나무바람을 마셔요. 도시에서 살건 시골에서 살건, 어디에서나 고운 바람 불 수 있는 터전으로 일구어요. 이런 일을 하건 저런 놀이를 하건, 나와 네가 함께 마시는 바람을 돌아보면서, 바람맛과 바람내음 살찌우는 길을 걸어요.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당신은 어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