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3.15.
 : 풀 뜯는 자전거

 


- 봄을 맞이한 시골에서는 풀 뜯는 재미가 한창이다. 집에서도 집 둘레에서도 마을에서도 온갖 풀이 돋으며 비로소 살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봄이란 모든 숨결 푸르고 싱그럽게 깨어나면서 아름답다. 면소재지 우체국 다녀오는 길에 풀을 뜯고, 아이들과 함께 집 언저리에서 풀을 뜯는다. 네 식구 다 먹지 못할 만큼 풀이 많이 자란다. 밭자락에 따로 푸성귀를 심지 않아도 갖가지 풀이 골고루 자란다. 자운영은 우리 집에서는 안 자라기에, 자전거마실 다녀오는 길에 잔뜩 뜯는다. 유채잎도 뜯고 갓잎도 뜯는다. 갓잎은 우리 집에도 많아 예쁘게 생긴 잎만 조금 뜯는다.

 

- 풀을 뜯다 보면 손에 풀내음 짙게 밴다. 갓 뜯은 풀을 입에 넣어 살살 씹으면,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꽃봉오리도 먹고 몽우리도 먹는다. 꽃을 먹으며 꽃내음과 꽃숨이 내 몸으로 스민다. 꽃을 먹을 적에는 스스로 꽃과 같은 넋과 얼이 되자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꽃을 줄 적에는 아이들 마음마다 새삼스러운 봄꽃 기운 살아나리라 생각한다. 큰아이는 스스로 씹어서 먹고, 작은아이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밥과 함께 씹어서 먹인다.

 

- 풀을 먹고 보면 사람으로서 굳이 다른 어떤 것을 더 먹어야 하지 않으리라 느낀다. 다만, 겨울에는 풀을 먹지 못하니까, 옛날 사람들은 이 좋은 풀들을 잘 건사해서 겨울나기를 했겠지. 겨울나기를 할 만한 뿌리푸성귀를 골고루 심어 흙땅에 묻으며 지냈겠지. 봄부터 가을까지는 냉장고 없어도 그날그날 풀을 뜯어 그날그날 먹으며 몸을 살찌웠겠지. 도시에서 제아무리 유기농 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다 하더라도, 시골에서 집과 마을 둘레에서 스스로 돋는 풀을 뜯어서 먹는 만큼 되기는 어렵다고 올봄에도 다시금 느낀다. 참말 누구나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먹을거리 걱정 없을 텐데. 돈버는 근심이 있다 하지만, 돈을 벌어 먹을거리 장만하는 흐름인 줄 깨달으면, 애써 돈벌이에 근심하기보다 즐겁게 삶을 누리며 먹는 밥을 살피고 지키면 한결 즐거우리라 느낀다.

 

- 작은자전거 바구니에 풀을 뜯어 담는다. 이내 바구니가 넘친다. 등에 멘 가방으로 옮긴다. 한 꾸러미 된다. 시간을 보니 풀 뜯는다며 삼십 분 훌쩍 지나갔다. 와, 시간도 잘 가고 즐거운 놀이가 되는 풀뜯기이네. 내 좋은 이웃들 모두 풀 뜯는 기쁨과 웃음 실컷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마을 어르신들 농약하고 조금씩 헤어지면서 논둑 밭둑 어디에서나 풀 마음껏 뜯을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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