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서다
퍽 깊어 발을 담그기 어려운 바닷가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던 일을 문득 떠올립니다. 식구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보았고, 바닷물과 고기잡이배와 섬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닷물 빛깔은 황해와 남해와 동해가 모두 다르고, 남녘 끝자락을 떠나 제주섬을 거쳐 일본으로 가거나 태평양으로 나아갈 적에도 모두 다릅니다. 짙게 파란 쪽빛 바닷물이 있고, 뻘흙과 모래흙이 감돌며 노르스름한 바닷물이 있으며, 바닷풀 기운 잔뜩 서린 옅푸른 바닷물이 있어요.
하늘을 올려다볼 적에도 하늘빛이 늘 다른 줄 느낍니다. 눈부시게 파란 빛깔이 있고, 희뿌윰한 빛깔이 있으며, 짙파랑빛이 있다가는, 파르스름한 빛깔이 있습니다. 해가 막 뜨거나 곧 질 적에도 하늘빛은 새삼스럽습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아이들이 자랍니다. 나도 아이들도 하루를 새로 누립니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과 머리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내 몸은? 내 마음은? 내 머리는? 하는 일이 늘고, 한 일이 늘며, 할 일이 느는 나는? 읽은 책이 늘고, 읽을 책이 기다리며, 쓸 책도 늘어날 나는?
1초조차 가만 있지 않으면서 뛰거나 구르거나 달리거나 뒹굴거나 기거나 복닥거리는 아이가 퍽 오래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을 쳐다보며 내 오늘을 곰곰이 되새깁니다. 4346.3.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