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8

 


따뜻하며 좋은 집
― 사이에서
 강태영 사진
 사월의눈 펴냄,2013.1.31./2만 원

 


  내가 먹는 밥은 내 숨결입니다. 봄나물 뜯어서 먹으면 봄나물이 내 숨결 되고, 라면 끓여서 먹으면 라면이 내 숨결 됩니다. 냇물을 떠서 마시면 냇물이 내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가게에서 먹는샘물 사다 마시면 먹는샘물이 내 숨결로 거듭날 테고요.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는 사람은, 신문에 가득 실린 사건과 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사건과 사고 이야기 가득한 신문을 읽으며, 이녁 머릿속에는 사건과 사고 생각이 자꾸 맴돌며, 으레 이런 사건과 사고 이야기를 이웃과 동무랑 주고받습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본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씨앗을 심어 날마다 사랑스레 돌보면서, 이녁 머릿속에 마음속에는 씨앗하고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넘실거려, 이녁 이웃과 동무랑 이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비판은 늘 비판을 낳습니다. 비판을 하면서 어떤 정치나 사회나 교육이나 문화를 바꾸지 못합니다. 비판을 할 때에는 비판이 남고 새 비판이 자라며 다른 비판이 불거집니다.


  사랑은 늘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을 하면 정치이든 사회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헤아릴 뿐,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아요. 곧,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마음결로 정치를 가끔 헤아리면, 정치가 사랑스레 바뀝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문화를 더러 떠올리면, 문화가 사랑스레 달라져요.


  아픈 이웃한테 찾아가서 아픈 이웃 삶자락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으면 ‘아픈 삶자락 보여주는 사진’을 얻습니다. 살가운 이웃하고 함께 살아가며 살가운 이웃 삶자락을 틈틈이 사진으로 찍으면 ‘살가운 삶자락 나누는 사진’을 얻습니다.

 

 

 

 

 

 


  두멧시골 두멧나라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쁘장하고 몸매 늘씬한 아가씨를 만나서 사진을 찍어야 패션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찍을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이런 갈래 저런 이름 붙이는 사진이 아닌, 그저 ‘사진’을 찍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사랑할 삶을 떠올리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하고픈 삶을 생각하며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삶을 즐기며 찍는 사진입니다.


  어떤 부자가 돈을 또 얼마나 더 갈무리해서 더 어마어마하게 큰 부자가 되든 말든 나하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만 원짜리 사진기를 쓴들, 일억 원짜리 사진기를 수십 수백 대 갖춘들, 나하고 얽힐 일 없습니다. 일억 아닌 백억 원짜리 사진기가 그이한테 있다 하더라도, 그이는 나처럼 느긋하고 한갓지게 우리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떠들고 웃고 놀면서 사진을 찍지 못해요. 그이는 너무나 커다란 돈을 벌어 요모조모 건사하느라 바쁘거든요.


  내가 쓰는 사진장비는 아주 값쌉니다. 한물 갔다 할 만할 뿐 아니라, 두물 석물 넉물 간 구닥다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갓 나오는 번쩍거리며 값지거나 값비싸다 하는 사진장비를 바라보면, 기계로 따질 때에는 문득 이런 느낌이 들곤 해요.


  그런데, 나는 열 몇 해째 쓰는 낡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습니다. 나는 웃옷 한 벌 열 몇 해째 손빨래를 하고 마당에 해바라기하며 말려서 새로 입습니다. 큰아이는 다른 이웃 아이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작은아이는 큰아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습니다. 아주 가끔 아이들한테 새 옷 한 벌 사 주기도 하지만, 이웃한테서 물려받아 입히는 옷이 참 곱고 예뻐요. 아이들은 즐겁게 옷을 받아 입고, 아이들은 스스로 새 웃음꽃과 노래열매 길어올립니다.

 

 

 

 

 

 


  따뜻하며 좋은 집은 ‘내 보금자리’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내 손길로 따사로이 돌보는 곳이 내 보금자리입니다.


  부동산은 부동산일 뿐, 보금자리가 못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살기는 하지만, 집을 보금자리로 여기며 누리는 사람이 있고, 집을 부동산으로 삼아 숫자를 따지는 사람이 있어요. 집값이 오르면 내 보금자리가 나아질까요. 집값이 떨어지면 내 보금자리가 서글플까요.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쉰 해 백 해 오백 해를 살아가고 싶어요. 나는 내 보금자리를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우리 아이들은 새로 아이 낳아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집값이나 땅값이 오른대서 팔아치우고 다른 데로 갈 마음이 없어요.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픈 보금자리예요.


  강태영 님이 즐긴 사진으로 엮은 사진책 《사이에서》(사월의눈,2013)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여느 책방에서 구경할 수 없고, 인터넷책방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책을 펴낸 분한테 따로 연락을 하거나, 사진책 펴낸 작은 출판사 작은 인터넷집에 들어가서 주문하고 천천히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편지값까지 치러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뭘 이렇게 번거롭게 책을 만들어서 파느냐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은 누구나 이렇게 다루었어요. 고작 열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운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여러 날 기다린 다음 받아서 읽었어요. 빨리빨리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라, 느긋하게 오래도록 책상맡에 두면서 아로새기고 되새기고 곱새기고 돋을새기면서 즐길 때에 책이라고 했어요. 예부터 사람들은 책 하나 찬찬히 즐기면서 누렸지,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어치우지 않았어요. 다섯 수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오래도록 꾸준하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넋으로 즐기다가 시나브로 다섯 수레 책이 모일 뿐, 처음부터 큰돈으로 왕창 사들이는 책은 아니었어요. 곧, 누군가는 100조 원이니 1조 원이니 하는 큰돈 있는 부자라 하더라도, 이녁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지 못하면 모든 돈이 부질없어요. 일억 원짜리 사진기가 있다 한들, 당신 아이들 웃음꽃 사진을 한갓지게 담을 겨를이 없으면 무슨 보람 있겠어요. 아이들한테 천 원짜리 과자 한 봉지 사 주려 하더라도 바닥난 살림돈이 떠올라 그냥 물 마시고 밥 먹자고 말하는 살림살이이지만,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뛰고 함께 별바라기 해바라기 누리는 하루라면 모든 삶이 보람입니다.


  사진책 《사이에서》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누리는 따뜻하며 좋은 집을 노래합니다. 이야기 한 자락이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 두 자락이 노래가 됩니다. 이야기 석 자락 있으면 사랑이 되겠지요. 이야기 넉 자락 있으면 이제 무엇이 될까요. 삶이 될까요. 꿈이 될까요. 믿음이 될까요. 웃음이 될까요. 나무가 될까요. 숲이 될까요.


  삶을 사랑하면서 꿈을 꾸는 마음 곱게 건사하면서 사진 한 장 즐기는 이웃이 차츰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이야기 한 꾸러미 자라기를 빕니다. 당신과 우리 사이에서 노래 한 가락 울려퍼지기를 바랍니다. 4346.3.8.쇠.ㅎㄲㅅㄱ


* 사진책 《사이에서》를 사서 읽고 싶으면 *
https://www.facebook.com/aprilsnowpress
honeyshy@gmail.com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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