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이 언제부터 900원? (교보문고 중고장터)
참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라보고 움직인다. 돈을 바라본대서 잘못이 아니요, 돈을 바라보기에 나쁘지 않다. 다만, 돈만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을 안 바라본다거나, 돈바라기에 바빠 사랑바라기하고 등돌릴 때에는 하나도 안 반갑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아름다운헌책방’을 만든다 할 적에 안 반가웠고, 영풍문고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같은 데에서 ‘중고책방·중고장터·중고샵’이라는 이름으로 헌책 장사를 할 적에 안 반가웠다. 왜냐하면, 아름다운재단도 큰 인터넷책방(이랑 매장책방 모두)도 돈을 바라보면서 ‘헌책방 작은 일꾼 삶자리’를 파먹으려고 했으니까.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 무렵, 헌책방에서 값싸게 사서 읽는 여느 책 한 권 값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바뀌었다. 이즈음 적잖은 책손이 500원 오르는 헌책 값을 참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1990년대 한복판을 지나며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1500원 즈음 했고,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000원 즈음 했다. 2000년대 한복판을 지날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2500원 즈음 했고, 2010년대로 접어들 무렵 여느 헌책 한 권 값이 3000원 즈음 했다. 이제 2010년대 한복판에 가까운 요즈음 여느 헌책 한 권 값은 3500원 즈음이다. 곧 4000원 즈음 하리라.
헌책방에서 다루는 헌책이라서 ‘터무니없이 쌀’ 수 없다. 책을 사들이는 값, 가게를 꾸리는 값, 책방을 지키는 일꾼 품삯, 책시렁에 쌓인 채 자리를 잡아먹는 값, 오래도록 안 팔려 버려야 하는 값, 여러 가지를 헤아리며 헌책 한 권 값을 붙인다. 1980년대 첫머리까지 웬만한 헌책 한 권 500원이면 살 수 있다 했는데, 그무렵에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 10권 가운데 5권이 팔렸다 했다. 이만한 흐름이라면 헌책 한 권 값이 퍽 눅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만큼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 적에도 눅은 값으로 팔아야 한다.
이레쯤 앞서 나한테 누리편지 하나 온다. 교보문고에서 교보 회원 모두한테 보내는 글월이다. 이 글월을 여니 “베스트 중고책은 900원에 사고, 쌓여 있는 책은 팔아도 보고!” 하는 이름이 굵직하게 나온다. 책 한 권에 900원이라니. 게다가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헌책이라니.
교보문고를 비롯해 알라딘이나 여러 새책방들은 헌책을 다루면서 ‘헌책’이라는 낱말을 안 쓴다. 굳이 한자말 ‘중고(中古)’를 붙인다. 새책을 다루면서도 ‘새책’이라는 낱말보다 ‘신간(新刊)’이라는 한자말을 좋아하고, ‘뉴(new)’라는 영어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을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 책마을에서 헌책방이 헌책을 다루며 이어온 책삶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헌책방이 이 나라 마을마다 한두 군데씩 뿌리를 내리며 마을 책삶을 일군 흐름을 뒤흔들어 송두리째 돈잔치를 꾀하기까지 하니, 이들 큰 새책방들이 벌이는 ‘헌책 장사’는 장사라기보다는 차떼기에 가깝고, 큰 할인매장이 작은 가게를 잡아먹는 모습하고 닮는다. 큰회사 빵집이 동네빵집 500미터 언저리에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나왔다 하는데, 큰 새책방이 헌책 다루지 못하게 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 새책방이 헌책 값을 마구 후려쳐서 책마을 어지럽히는 짓을 다그치는 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새책 값으로 3000원인 만화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1000원이 알맞다. 새책 값으로 10000원인 문학책이라면 헌책 값으로 3000원이 알맞다. 그런데 교보문고에서 말하는 “베스트 중고책 900원”이란 무엇일까. 책을 이렇게 깎아내려도 될까. 책을 이처럼 깎아내리면서 사람들한테 글월을 띄워도 될까. 책을 즐겁게 읽을 사람들이 ‘책’ 아닌 ‘떨이 물건’을 ‘엉터리 헐값’으로 사들여도 책읽기를 할 수 있을까.
더 싸게 판대서 훌륭한 책방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책을 다뤄야 아름다운 책방이 된다. 아름다운 책을 알맞고 올바른 값으로 다룰 때에 훌륭한 책방이 된다. 전국에 여러 새끼가게 거느리는 교보문고가 제넋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4346.2.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