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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밝히는 책
책시렁을 환하게 밝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책시렁에 수십 권이나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이 꽂히는데, 여기에 어느 책 하나 살포시 깃들며 다른 책들 모두 환하게 밝히는 남다른 책 하나 있습니다.
마을을 환하게 밝히는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수백 수천 군데 가게가 줄줄이 늘어선 마을인데, 여기에 어느 책방 하나 조용히 깃들며 다른 가게를 모두 눈부시게 밝히는 남다른 책방 하나 있습니다.
도서관이 마을에 수십 군데 있지 않아도 됩니다. 책방이 마을에 열 몇 군데씩 있지 않아도 됩니다. 책방거리나 책방골목이 없어도 됩니다. 꼭 한 군데 조그마한 책방이 있어도 넉넉하고, 꼭 한 군데 조그마한 책방에 책 하나 있어도 즐겁습니다.
내 보금자리에 책이 십만 권이나 백만 권 있을 때에 뿌듯하지 않습니다. 내 보금자리에는 책이 한 권조차 없어도 됩니다. 내 보금자리에 책 하나 있기를 바란다면, 나와 살붙이 눈길을 틔우고 마음을 열도록 북돋우는 아름다운 이야기 깃든 책 하나이면 넉넉합니다. 수십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이 삶을 빛내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는 손길로 살그마니 집어들어 기쁘게 웃음짓도록 돕는 책 하나라면 즐겁습니다.
햇살 한 조각이 따스합니다. 바람 한 닢이 시원합니다. 물 한 모금이 상큼합니다. 꽃 한 송이가 어여쁩니다. 말 한 마디가 반갑습니다. 돈 한 푼이 고맙습니다. 노래 한 가락이 신납니다. 춤 한 사위가 멋집니다. 이야기 한 꾸러미가 소담스럽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이 해맑습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