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시를 드리다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속에서 생각 한 톨 자라납니다. 마음을 가만히 기울이며 내 생각 한 톨에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올라 잎이 돋고 꽃망울 맺히기까지 기다립니다. 꽃망울에 나비가 찾아들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모습 지켜본 다음, 꽃이 져서 열매를 맺는 동안 기다립니다. 열매가 톡 하고 떨어져 열매 속에 깃든 씨앗이 다시 흙으로 스며 새롭게 태어나기까지 기다립니다.
내 글공책에 싯노래 한 자락 적바림합니다. 정갈한 종이에 옮겨적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한테 내밉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 돈을 드리지 못하고, 내 어버이한테 어떤 놀라운 물건을 선물로 드리지 못합니다. 나는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도 돈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재미난 물건을 선물로 베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내 하루인 터라, 즐겁게 웃으며 마주한 이웃 삶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글 한 줄 적바림할 수 있어요. 내 사랑을 담은 싯말 하나를 살며시 건넬 수 있어요.
작은아버지한테 싯노래 한 자락 선물합니다. 옆지기 외삼촌한테 싯노래 한 자락 선물합니다.
내 마음밭에서 생각 한 톨 자라나니 즐겁습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생각 한 톨 이야기꽃으로 피어날 수 있어 기쁩니다. 글은 꽃입니다. 글은 사랑입니다. 글은 이야기입니다.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