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5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09

 


고흐 그림이 있는 마을
― 칠색잉꼬 5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4.25./9000원

 


  전남 고흥에서 충북 음성으로 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나들이를 합니다. 고흥 시골집에서는 눈을 구경할 일이 거의 없지만, 음성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오니, 아침에 새롭게 눈이 내립니다. 아직 한참 꿈나라를 누리는 아이들은 눈이 오는 줄 모를 텐데, 곧 잠에서 깨면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까르르 웃고 노래하며 뒹굴겠구나 싶습니다.


  펄펄 내리는 눈은 온 들판을 덮습니다. 눈송이는 지붕을 덮고 숲을 덮으며 찻길을 덮습니다. 아파트도 공장도 하얗게 하얗게 덮습니다. 눈은 어디에나 내립니다. 눈은 어느 곳에나 내려앉습니다. 눈은 가리는 곳이 없습니다. 눈은 따지는 곳이 없습니다. 눈은 싫다 하거나 마다 하지 않습니다. 잣나무 가지에도 밤나무 가지에도 내려앉습니다. 사람들 머리에도 시외버스 지붕에도 찬찬히 내려앉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은 천천히 녹습니다. 찻길에 내린 눈은 꽁꽁 얼어붙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은 흙으로 스며들어 흙을 살찌웁니다. 찻길에 내린 눈은 자동차 다니기 어렵게 얼어붙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을 쓸거나 치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햇살이 천천히 녹여 들판을 천천히 살찌우거든요. 찻길에 내리는 눈은 곧장 치우는 사람들입니다. 찻길에 눈이 쌓이면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면서 바지런히 쓸거나 치웁니다.


- “부모란 존재는 아이의 기분을 모르나 봐요.” “몰라도 괜찮아. 내 부모가 살아 있다고 해도 어차피 반대했을 거야. 학생 주제에 연애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지!” (20쪽)
- “그야 위로금을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받는다 해도 마음의 상처는 나아지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우린 서로 손을 잡고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한달, 반드시 서로 우정으로 감싸 주자고 맹세를 했습니다.” (25쪽)

 

 


  빗물은 들과 숲에 녹아듭니다. 빗물 내리는 들과 숲은 무럭무럭 자라며 푸른 빛깔 흐드러지게 뽐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빗물 또한 썩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눈발 날리는 찻길도 빗물 흩날리는 찻길도, 자동차한테는 그저 성가실 뿐입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도시사람은 눈도 비도 반기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햇살이 눈부시거나 햇볕이 따사롭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바람이 불거나 자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아파트와 숱한 건물에 깃드는 사람들은 해가 뜨건 말건 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하상가에서 일하거나 지하상가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구름이 흐르거나 말거나 구름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찻길에서 살지 못합니다. 들새와 멧새는 찻길에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들짐승과 멧짐승은 찻길 언저리에 얼씬하지 못합니다. 찻길 빽빽한 도시는 풀벌레한테도 새한테도 짐승한테도 아주 안 좋은 터입니다. 오직 사람만 드나들거나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기웃거리기 힘든 도시요, 같은 사람한테조차 높다란 울타리가 있거나 두꺼운 바위가 턱 가로막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 “전 삼류 이하인 볼 것 없는 떠돌이 배우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선 명배우세요. 이렇게 매일 밤 절 감격하게 만드시는걸요.” (67쪽)
- “이제 그만 좀 하라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괜히 멋이나 부리고.” (108∼109쪽)

 

 


  그림쟁이 고흐 님은 어떤 마을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림쟁이 박수근 님이나 이중섭 님은 어떤 보금자리에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시를 쓴 신동엽 님은 어떤 마을에서 삶을 빛내며 시를 썼을까요. 김남주 님이나 박노해 님은 어떤 터에서 이녁 삶을 밝히며 시 한 자락에 꿈 한 자락 살포시 얹었을까요.


  자동차 지나간 자리에는 풀이 돋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밟은 자리에는 풀이 깔려 죽습니다. 자동차 지나다니는 찻길에서는 논이든 밭이든 잘 되기 어렵습니다. 논이나 밭은 조용한 시골마을 한켠에 있을 때에 잘 되고, 멧새 노랫소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어야 기름집니다. 논도 밭도 빗물과 눈송이를 머금으면서 해마다 알찬 곡식과 푸성귀를 베풉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 헤아려 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 때에 가장 빛나는 넋이 될까요. 사람은 어떤 먹을거리를 지을 때에 스스로 빛나는 얼이 되나요. 사람은 먹을거리를 어떻게 나누면서 하루를 즐길 적에 서로서로 고운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까요.


- “이 인형을 조종하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게. 내가 감동할 정도로. 자네가 이 인형에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냥 넘겨주지! 허나 그렇게 못 한다면 이 녀석은 화장할 거네.” (140쪽)
- “그러니까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잖아. 잉꼬 너한테서 손을 떼는 꼴이 된단 말이야!” “그거 좋지. 그렇게 되면 나도 편해질 테니.” “이 차가운 자식.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대체 나한테 뭘 어찌하라는 건데!” “어떻게든 좀 도와주면 좋잖아.” (160∼161쪽)
- “공포탄이라니. 날 감동시키는군, 형사나리. 이건 돌려주겠어.” (17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잉꼬》(학산문화사,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는 터전을 보여주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람이 서로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는 터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꿈을 이루는 길이 어떻게 샘솟아 널리 퍼지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 “어이, 도지에몬. 뭐 하는 거야. 왜 밭을 갈아?” “화단을 만들고 있어요. 저 애랑 약속했잖아요.” “이 순해빠진 녀석아! 정말로 저 애한테 봉사할 생각이야?” “저 불쌍한 애한테 거짓말을 할 셈이요?” (186쪽)
- “이 마을에는 고흐나 세잔느도 있는 반면에, 이런 야비한 인종들도 떼로 몰려다닌단 말이렷다!” (190쪽)


  고흐 그림은 어떤 마을에 있을 때에 어울릴까요. 벨라스케스 그림이나 루벤스 그림은 어떤 마을에 있을 때에 알맞을까요.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님을 기려, 고흥군에서는 ‘천경자전시실’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보살피거나 나누지 못했어요. 천경자전시실 옥상 물탱크가 터져 물이 줄줄 새기까지 했어요. 천경자 그림 예순 점 남짓 받아 ‘천경자전시실’을 꾸린 고흥군이었지만, 2012년 12월 끝무렵, 고흥군은 그림들을 모두 그예 돌려주고 전시실을 문닫기로 했어요. 우리 식구는 고흥에 자리를 잡아 살아가지만, 이제 천경자전시실에 마실을 갈 수 없고, 고흥에서는 그림 구경도 할 수 없구나 싶습니다.


  미술관은 어느 곳에 지을 때에 어울릴까요. 박물관은 어느 터에 세울 때에 알맞을까요. 학교는 어느 곳에 지어,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시골마을은 어떤 삶 어떤 사랑 어떤 꿈을 일구는 보금자리가 될 때에 환하게 빛날까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무엇이 있을 만한 곳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에는 어떤 문화나 삶이나 예술이나 이야기가 깃들 때에 어울릴까 헤아려 봅니다. 고흥군 고흥읍에는 박지성공설운동장이 있고, 고흥군 금산면에는 김일체육관이 있는데, 고흥군은 이러한 이름을 붙인 시설을 얼마나 건사할 만하거나 얼마나 아낄 만하거나, 얼마나 사랑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겨울바람 그치고 봄바람 온 들판에 가득할 테지요. 머잖아 봄햇살 온 숲에 드리우면서 푸릇푸릇 싱그러운 새 빛 눈부시겠지요. 아이들과 즐길 숲마실과 들마실과 바다마실을 기다립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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