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바위 틈 후박나무 책읽기

 


  나무는 씨앗으로 퍼집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 천천히 키워 어린나무를 옮겨서 심기도 할 테지만, 오랜 나날 한 곳에서 튼튼하게 자라 우람하게 서는 나무는 하나같이 스스로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서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기 마련입니다.


  나무는 사람이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랍니다. 빗물을 먹으며 여름을 나고, 눈송이를 가지에 얹으며 겨울을 납니다. 찬바람 더운바람 가리지 않고 맞아들입니다. 들새와 멧새가 끊임없이 내려앉아 노래를 부르며 지나갑니다.


  햇볕을 먹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바람결 따라 나뭇잎을 흔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닷가 바위 틈에 씨앗을 떨구어 자라난 후박나무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운 사랑 북돋웁니다. 한 해 다섯 해 열 해 쉰 해 천천히 자라면서 줄기는 굵어지고 가지는 깊어지겠지요. 머잖아 바닷사람 바위에 걸터앉아 쉴 적에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겠지요. 해마다 새롭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 여럿 즐겁게 떨굴 테고, 숱한 씨앗은 저마다 바위 틈으로 깃들어 힘껏 뿌리를 내리려 하겠지요.


  사람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갈매기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후박나무는 갈매기를 바라봅니다. 어린 갈매기는 어린 후박나무를 보며 자라고, 어른 갈매기는 어른으로 자란 후박나무에 앉아 쉽니다. 새롭게 태어날 갈매기는 차츰 커지는 후박나무에 내려앉아, 먼먼 옛날 옛 어른 갈매기가 이곳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물려받습니다. 434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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