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0. 책에 깃든 빛누리 - 헌책방 이가고서점 2012.5.3.

 


  밝은 아침에 책을 읽습니다. 환한 낮에 책을 읽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운 뒤에는 책을 덮습니다. 깜깜한 밤에는 즐겁게 잠을 잡니다. 들일을 하거나 집일을 하는 동안 종이책을 내려놓습니다. 풀을 뜯거나 밥을 차리며 종이책을 쥘 겨를이 없습니다. 깊은 밤에 새근새근 잠을 자며 종이책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밝은 아침에 밝은 햇살을 머금는 숲입니다. 환한 낮에 따순 햇볕을 받아먹는 숲입니다. 사람이 읽는 책은 숲에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란 나무를 베어 빚습니다. 숲이 있기에 책이 있고, 숲내음이 책내음으로 거듭납니다. 숲이 있어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얻고, 숲이 있어 사람들은 집을 지으며, 숲이 있어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이야기를 책에 담아 나눕니다.


  밝은 아침에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책으로 몸을 바꾼 나무는 밝은 아침에 밝은 햇살을 머금으며 빛나거든요. 환한 낮에 책을 읽을밖에 없습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환한 낮에 따순 햇볕을 받아먹으며 새로운 빛이 되거든요.


  책을 읽는 사람은 나무를 읽습니다. 책이 머금은 아침빛을 읽고, 책이 받아먹은 낮볕을 읽습니다. 나무는 어떤 아침빛을 머금어 책으로 거듭났을까요. 나무는 어떤 낮볕을 받아먹고 자라면서 책으로 다시 태어났을까요.


  온갖 책이 두루 꽂힌 책시렁 사이를 거니는 사람은, 온갖 나무 두루 자라는 숲 사이를 거니는 셈입니다. 숱한 나무 아름다이 자라는 숲을 거니는 사람은, 숱한 책이 알뜰히 꽂힌 책터를 누비는 셈입니다.


  책에 깃든 빛누리를 떠올려요. 책이 태어난 삶자락을 헤아려요. 책으로 이루는 숲을 생각해요. 책에서 샘솟아 찬찬히 퍼지는 사랑누리를 내 보금자리에 살포시 펼쳐요.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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