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책읽기

 


  맨 먼저 피는 꽃은 없습니다. 꽃은 서로 다투지 않아요. 풀포기는 같은 자리에 뿌리를 내려 서로 엉키기도 합니다. 뿌리가 서로 엉키며 어느 한쪽이 더 기운을 내어 다른 뿌리를 말려죽일 수 있을 테지만, 밭에서 김을 매고 보면, 온갖 풀이 뿌리가 하나로 엉킨 채 씩씩하게 자라곤 합니다. 조금 일찍 피었다가 지는 꽃이 있고, 나란히 피며 나란히 지는 꽃이 있어요. 때에 맞추어 피는 꽃이지, 맨 첫째로 피거나 둘째로 피거나 하면서 다툴 일이 없습니다. 서로서로 알맞게 피고, 서로서로 즐겁게 씨앗을 맺어, 서로서로 흙숨 나누어 맡습니다.


  풀이 서로 다투거나 겨루기를 한다면, 아마 스스로 씨가 마르겠지요. 한 가지 풀만 자라는 땅은 기름지지 못하거든요. 여러 풀이 자라면서 여러 기운이 스미는 땅이 될 때에 기름지거든요.


  냉이꽃 조그맣고 하얀 꽃송이 벌어집니다. 겨울비 지나고 들판 촉촉하고 보드랍게 녹은 이듬날, 논둑과 들판마다 조그마한 들꽃이 잔치를 벌입니다. 아직 흐드러진 잔치는 아니요, 천천히 노래하는 잔치입니다. 머잖아 하얗게 파랗게 노랗게 발갛게 잔치마당 이루어지겠지요.


  아이들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거닐다 냉이꽃 몇 송이 바라봅니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는 군내버스 타고 이웃마을 지날 적에도 ‘저기 냉이꽃 피었네’ 하고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434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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