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22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4

 


즐거운 삶과 즐거운 밥
― 피아노의 숲 22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2013.1.15./4800원

 


  한겨울에 따순 볕 내리쬐기를 바라면, 추위는 어느새 걷히면서 따순 볕이 온누리를 포근히 감쌉니다. 그러나 한겨울은 꽁꽁 얼어붙을 뿐, 좀처럼 녹을 낌새가 없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한겨울 따순 볕을 제대로 바라지 않거든요. 하늘을 바라보고 해를 올려다보면서 가장 사랑스럽고 맑은 눈빛과 목소리로 따순 볕을 바라면, 참말 따순 볕이 드리우며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 녹습니다.


  한여름에 시원한 바람 불기를 바라면, 더위는 어느덧 스러지면서 시원한 바람이 온누리를 상큼하게 감돕니다. 그러나 한여름은 푹푹 찔 뿐, 도무지 시원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한여름 시원한 바람을 슬기롭게 바라지 않거든요.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가장 착하고 밝은 눈망울과 노래로 시원한 바람을 바라면, 참말 시원한 바람이 찾아들며 푹푹 찌던 더위를 잠재웁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겨울날 난방기를 돌리거나 옷을 여러 벌 껴입기만 할 뿐,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해를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름날 냉방기를 돌리거나 얼음과자를 사다 먹을 뿐,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구름을 올려다보지 않아요.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날씨를 알아보기는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열어 하늘 흐름과 햇살 흐름과 바람 흐름을 느끼려 하지 않아요.


- “기사가 진실인지 어떤지가 문제는 아니야. 팡 웨이가 내일 파이널에 맞춰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렇지요.” (24쪽)
- ‘아아, 빨리 이 무대에 서고 싶어. 빨리 내 1번을 이 회장에 들려주고 싶어.’ (37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그린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3) 스물둘째 권을 읽으며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카이와 아지노 선생님은 늘 가장 즐겁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한 가지를 바랍니다. 당신들이 ‘피아노를 가장 잘 칠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당신들이 누릴 ‘아름다운 피아노 가락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카이도 아지노 선생님도 누구하고 겨루는 피아노를 치지 않습니다. 카이도 아지노 선생님도 ‘마음을 아름답게 다스리는 피아노 가락’을 좋아합니다. 콩쿠르 대회에 나와 피아노 솜씨를 선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 마음은 ‘솜씨 자랑’하고는 사뭇 동떨어집니다. 피아노 하나로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사랑을 잇거나 맺는 즐거운 꿈을 꿉니다. 그리고, 이 꿈은 찬찬히 이루어져요. 여러 나라 여러 젊은이들 여러 피아노 가락을 실컷 누리지요.


  악보가 있지만, 악보와 똑같이 칠 수 있는 피아노는 없어요. 악보는 숨결이요 피아노 또한 숨결이거든요. 피아노 앞에 선 사람 또한 숨결이에요. 저마다 살아온 결에 맞추어 피아노 어루만지는 손길이 달라요. 저마다 생각하는 꿈과 사랑에 따라 피아노 가락이 달라요.


- ‘음악은, 어쩌면 이다지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48쪽)
- “카이는 아마미야 씨의 연주를 몇 번 들은 적 있습니다.” “네?” “1년에 한 번 학생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투어’를 하시죠? 그 리사이틀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년 빠짐없이 들으러 가요.” (79쪽)


  책을 읽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지식 자랑을 하거나 지식 쌓기를 하려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솜씨 자랑을 하거나 솜씨 쌓기를 하려고 피아노를 치지 않습니다. 즐겁게 치는 피아노이고, 즐겁게 듣는 피아노입니다. 즐겁게 읽는 책이요, 즐겁게 쓰는 책이에요.


  즐겁게 밥을 지어, 즐겁게 밥을 먹습니다. 즐겁게 바느질을 하거나 빨래를 한 다음, 즐겁게 옷을 입어요. 즐겁게 자고, 즐겁게 일어납니다.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놉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즐겁게 춤춥니다. 삶입니다.


- “실은 그 녀석이 초등학생 때, 저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대신 약속해 달라고 한 게 있어요. 피아노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계약이나 다름없죠! 카이에겐 일본에서 활동하기 힘든 사정이 있기 때문에, 세계를 상대로 먹고살겠다는 게 애초부터의 목표였지요.” (84쪽)
- “자네가 나의 피아노에 끌린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자네가 추구하는 음과 내가 추구하는 음이 일치했기 때문일 수도 있네. 그래서 자네의 영혼이, 나의 피아노에 강하게 반응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줄 수는 없겠나?” (232∼233쪽)


  만화책에 나오는 카이는 ‘피아노를 치며 먹고살기’를 바랍니다. 피아노로 돈을 많이 벌 생각이 아닌, 카이 스스로 사랑하는 피아노를 언제나 사랑스레 치면서 날마다 즐겁게 삶을 꾸릴 수 있기를 바라요.


  즐겁게 피아노를 치니까, 즐겁게 먹고살기를 바랄 테지요. 즐겁게 ‘다른 사람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니까, 즐겁게 피아노 삶을 누릴 테지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치르도록 하는 어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름다운 삶’을 배우거나 누리기를 바라는가요? 아이들이 슬기로움을 빛낼 대학교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새로 익히거나 나누기를 바라는가요?


  아마, 아니겠지요. 오늘날 어버이들은 한결같이 ‘이녁 아이들이 시험점수 잘 따기’를 바라면서 학교에 보내겠지요. 오늘날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녁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몇몇 손꼽히는 대학교에 붙기’를 바라겠지요. 이렇게 붙은 다음에 돈 잘 버는 큰회사에 붙기를 바라겠지요.


  꿈을 꾸지 못하는 요즈음 이 나라 어버이와 아이입니다. 꿈을 꾸는 길로 이끌지 못하는 요즈음 이 나라 어른과 교사입니다. 공부는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가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밥은 무엇이고 왜 먹어야 하는가부터 알 수 있어야 해요. 서로서로 주고받는 말이란 무엇인가요. 마을과 나라와 정부와 사회란 무엇인가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사랑을 찾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면 사랑도 못 찾습니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꿈을 이룹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면 꿈도 못 이룹니다. 돈은 벌까요? 아마, 돈은 벌는지 몰라요. 그러나, 즐겁게 버는 돈하고는 멀고, 즐겁게 나누거나 쓰는 돈하고도 멀 테지요.


- “슈우헤이, 이 거리는 아름답지? 정말 아름다워.” “응. 내가 1년 살면서 알게 된 건, 폴란드는 일본과 다르게 거의 ‘평지’라는 점이야. 한없이 평평하다는 느낌. 그 인상이 꽤 강렬했어. 일본은 섬나라이고, 독일에서도 이런 느낌은 없었거든. 알고 있어? 폴란드라는 이름의 유래가 ‘평지의 백성’이라는 의미라는 거? 쇼팽은 평지의 사람이야.” ‘쇼팽은 평지에서 자랐어. 끝없이 이어진 장대한 평지에서, 드넓은 하늘을 보며.’ (112∼115쪽)
- “최선을 다하게! 팡 웨이 군, 나는 자네의 미래가 궁금하네. 내가 추구하던 음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는지 보고 싶어.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펼쳐 보게!” (237∼238쪽)


  폴란드사람 쇼팽은 폴란드사람답게 살아가며 폴란드 이웃을 사랑하는 노래를 지어 피아노를 쳤습니다. 한국사람 아무개라면 어떤 아무개답게 살아가며 어떤 한국 어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 노래를 지어서 피아노를 칠 만할까요. 한국은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나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어떤 숨결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어떤 숨결이라고 느끼나요. 내가 마실 바람이란 무엇이고, 내가 쬘 햇볕이란 무엇이며, 내가 뿌리내릴 보금자리는 어디일까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을 손에 쥐는 사람들 가슴에 즐거움이라는 싹이 틀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 《피아노의 숲》을 읽는 사람들 마음밭에 사랑이라는 씨앗이 뿌리내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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