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다니는 마음

 


  서울이나 부산하고는 한참 멀고, 다른 시골이나 도시하고도 매우 먼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어디로 마실을 하든 머니까, 애써 마실을 다닐 생각을 안 합니다. 집에서만 지내고, 면소재지나 읍내를 가끔 드나듭니다. 시골집에 있다 보면, 굳이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즐거이 삶을 누릴 만하구나 싶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서 몸이 즐겁습니다. 마음과 몸이 즐거우면서 삶이 즐겁습니다. 마음과 몸 따라 삶이 즐거우면서 생각과 사랑과 꿈을 즐겁게 키웁니다.


  누군가 부르면 스스럼없이 찾아갑니다. 다만, 가까운 시골이나 도시를 찾아가더라도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두 시간이고, 서울에서 해남이나 장흥이나 강진까지도 네 시간이면 달릴 만하겠지요. 그런데, 네 시간이건 다섯 시간이건 읍내까지 달리는 길이지, 두멧시골을 오가는 길을 치면 훨씬 오래 걸려요.


  시골집을 나서면 둘레 모습이 아주 다릅니다. 조용하고 푸르며 싱그러운 바람을 누리다가, 슬슬 시끄러우며 매캐하고 먼지 많은 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을 벗어날 무렵부터는 골프장과 공장과 기찻길과 고속도로와 온갖 아파트와 건물을 만납니다. 물결치는 자동차 사이로 깃듭니다. 멧새 노랫소리가 잦아들면서 자동차 바퀴소리 커집니다. 풀벌레 울음소리 들을 수 없으면서 사람들 손전화 만지는 소리 늘어납니다. 풀내음과 나무내음이 사그라들면서 시멘트와 아스팔트 가루가 흩날립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시골은 뭇목숨이 푸르게 노래하는 소리가 어우러진다면, 서울은 뭇목숨이 슬프게 아파하는 소리가 얼크러지는구나 싶습니다. 시골에서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지내며 마음을 따사로이 추스를 수 있는 까닭은 나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하고 밥을 지으며 살림을 꾸리기 때문이요, 서울로 마실을 하며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지치는 까닭은 나 스스로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더라도 물과 밥과 바람이 매캐하면서 정갈하지 못하기 때문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서울이 매캐하고 어지러우면, 시골서 살아가며 누린 즐거움과 웃음을 살며시 나누어 주면 되겠지요. 내가 한껏 꽃피우는 이야기와 노래를 하나둘 들려주면 되겠지요. 4346.1.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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