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24.
 : 한겨울 달밤 자전거

 


- 옆지기가 과일을 먹고 싶다 말한다. 그래? 그럼 아직 면소재지 가게 안 닫았을 테니, 자전거 타고 휭 다녀오면 되지.

 

- 큰아이하고 작은아이 옷을 두툼하게 입히고 장갑을 끼운다. 내 바지 끝자락을 끈으로 묶는다. 마당에 자전거를 내놓는다. 그런데 바람이 되게 모질게 부네. 두 아이 데리고 밤저전거 타자면 퍽 힘들겠는걸. 그렇다고 힘들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면 참말 힘들 테니까. 즐겁게 달밤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해야지. 저 달 좀 봐. 이렇게 동그란 빛깔로 환한 달이 우리를 비춰 주잖아. 달빛을 누리면서 자전거를 달리고, 별빛을 업으며 자전거를 달릴 텐데.

 

- 마을 어귀를 벗어나 첫 오르막을 만날 때 체인이 풀린다. 처음부터 모진 바람을 맞아 그만 체인까지 빠진다. 어라, 오늘은 남달리 대단하네. 이 겨울날 밤바람을 맞서며 면소재지까지 다녀와야 하는구나. 체인을 끼운다. 자전거 앞등 약이 다 떨어져서 손전등 하나를 오른손에 쥐고 달린다. 그래도 면소재지 가는 길은 등바람이 분다. 면소재지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등바람 안 불어도 되는데, 어쨌든 가는 길은 그럭저럭 괜찮다.

 

- 면소재지 가게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수레에서 아이들을 하나씩 내린다. 볼이 얼고 꼼짝을 않는다. 많이 추웠지? 괜찮아. 몸 녹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돼. 과일을 산다. 아이들 다시 태운다. 자, 이제 추울 테니까 담요랑 겉옷 잘 여미어야 해. 휭휭 부는 칼 같은 바람을 맞는다. 면소재지를 천천히 벗어난다. 호젓한 시골길로 접어든다. 뒤에서 큰아이가 “아버지 추워요.” 하고 부른다. 그래, 춥지? 수레 덮개를 내려야겠구나. 덮개를 내리고 낑낑거리며 달리는데 큰아이가 또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른다. 응, 왜? 자전거를 멈추고 돌아본다. 덮개 아래쪽이 떨어져서 나풀거린단다. 그래, 덮개를 다시 여밀게. 한 발 두 발 힘을 내어 발판을 구른다. 아주 느리다. 그나마 걷기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퍽 힘이 든다. 아이들은 수레에 앉아 추운 바람 견딜 테지만, 아버지는 앞으로는 추운 바람 맞으며 몸과 얼굴과 손이 얼고, 등으로는 땀이 흥건하다.

 

- 고된 밤바람 자전거이지만, 웃으며 가자고 생각한다. 느릿느릿 발판을 구르면서 달을 올려다본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별빛을 바라본다. 얘들아, 우리가 이렇게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밤자전거도 호젓하게 타고, 차가운 겨울바람 맞으면서 한갓지게 마실 다닐 수 있단다. 겨울이니 겨울다운 바람인 줄 잘 아로새기렴. 밤이니 밤다운 별빛과 달빛인 줄 찬찬히 생각하렴.

 

- 집에 닿는다. 아이들을 수레에서 내리니, 둘 모두 춥다며 어머니를 부르면서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몸과 손을 녹인다. 나는 자전거를 벽에 붙이고 대문을 닫는다. 겉옷을 벗고 땀으로 흠뻑 젖은 속옷을 벗는다. 몸을 씻는다. 히유, 이제 살겠구나. 오늘은 매서운 겨울바람 실컷 먹었구나.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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