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들이 그저 종이에 찍힌 글씨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겉보기로는 종이꾸러미요, 글씨모임이라 할 테고,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라 여길 수 있지만, 나는 책을 ‘내 이웃과 사귀는 즐거움’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내 이웃이 나를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적바림한 이야기꾸러미가 바로 책이라고 느낍니다.
아마, 이 책 하나 쓴 분은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를 테지요. 그러나 이 책 하나 쓴 분은 나와 같이 ‘얼굴도 이름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서로 즐겁게 사귀고픈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지구별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온누리를 따사롭게 밝히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면서 책 하나 빚습니다. 환하게 웃음꽃 피우는 삶을 누리고 싶어 책 하나 책방 책시렁에 꽂습니다. 맑게 노래하면서 춤추는 마을잔치 이루고 싶어 주머니를 털어 책을 장만하고, 읽고, 아로새기고, 되새기면서 하루를 돌아봅니다.
이웃과 즐거운 마음 나누는 책읽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면서 나무책을 읽습니다. 후박나무 잎사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고, 눈발 흩날리는 예쁘장한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책과 구름책을 읽습니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낍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서 고개를 살며시 기대고는 아버지랑 나란히 눈을 감고, 마당에서 눈을 맞으며 바람을 느낍니다. 바람아, 바람아, 너도 하느님이지? 우리 아이도 하느님이고, 나도 하느님이며,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 모두 하느님이지? 모든 목숨은 책이고, 모든 책은 푸른 숨결이라고 느낍니다.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