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 영화

 


  시골집을 떠나 도시로 일을 하러 나오면 여관에서 묵는다. 인천이라면 형이 사는 작은 집에 깃들어 하룻밤 묵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잠을 얻어 잘 데가 없으니 여관으로 깃든다. 엊저녁 청주에 와서 여관에 깃들어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켜 본다. 청주에 있는 밥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참 오랜만에 신문을 살짝 들추기도 했다. 2013년 1월 16일치 ㅈ일보 1쪽을 보니 ‘한겨울 스모그’ 이야기가 실린다. 이제 ㅈ일보에마저 ‘스모그’ 이야기가 실리는데, 정작 이 이야기를 싣는 ㅈ일보 기자들은 자가용을 안 타거나 버릴까? 서울을 떠날까? 핵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도 모두 이 지구별과 한국을 얼마나 더럽히는가를 깨달을까? 한겨울에도 스모그가 생기고, 중금속이 차츰 늘어난다고 하는데, 도시사람 스스로 삶을 바꿀 생각이 있기나 있을까.


  여관에서 꾸벅꾸벅 졸며 영화 하나를 본다. 콜롬비아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영화 〈콜롬비아나〉이니까 콜롬비아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이 나라 달동네 작은 집들 모인 멧기슭 모습이 참 아름답다. 아, 이 나라 가난한 사람들 달동네 작은 집들 모인 멧기슭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답다 싶은 달동네 집들 모습에 끌려 영화를 보다가, 사람들 자꾸 죽이는 이야기가 흐르기에 그만 잘까 하다가 자꾸자꾸 더 본다. 그리고, 나중에는 잠을 확 깨며 바르게 앉아 마지막까지 들여다본다. 참말 그렇지만, 마음 나쁜 이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마음 나쁜 이는 스스로를 죽일 뿐이다. 마음 착한 이가 그예 여린 넋에 어쩌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고 만다.


  영화가 끝나고 다른 곳으로 돌린다. 방송국마다 사람 죽이는 영화나 연속극이 줄줄이 이어진다. 돈을 쓰는 이야기가 흐르고, 아가씨들 짧은치마가 춤추며, 연예인들 수다가 물결친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어른과 아이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신문이나 방송이 사람살이를 얼마나 따사롭게 보듬어 주는지 조금도 모르겠다.


  여관 창문을 연다. 여관에 들어올 적에는 활짝 열었고, 이제 조금 연 채 둔다. 여관에 폭폭 찌든 냄새가 내 몸과 코와 살갗 구석구석 찌른다. 시골집에 있을 적에 내 코는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오니 자꾸 재채기가 나오고 코가 막힌다. 도시사람은 어떤 바람을 마시면서 어떤 햇살을 쬘까. 가느다른 손톱처럼 어여쁜 초승달에 천천히 살이 붙는다. 며칠 뒤면 토실토실 동그스름한 달이 되겠지.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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