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몸

 


  인천으로 사진강의를 떠나야 하는 날이 밝는다. 새벽 세 시부터 짐을 꾸리며 부엌일 몇 가지를 한다. 새벽 다섯 시 이십오 분 즈음 택시 할아버지가 오시기로 했다. 읍내에 가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는 순천 기차역에서 일곱 시 이십사 분 기차를 타야 한다. 바쁘게 움직이는데다가 나 혼자 움직여야 하는 만큼, 오늘은 길에서 오래 보내야 하니, 내 몸한테 이야기를 건다. 집에서 똥을 누고 가면 좋겠네. 새벽 네 시 즈음 아랫배가 슬슬 보글거린다. 뒷간에 간다. 시원하게 똥을 뺀다. 고맙구나. 내 목소리를 들어 주어서.


  서울에서 볼일 마치고 인천으로 와서 여관에 묵는다. 뒹굴뒹굴하면서 아침을 맞이한다. 몇 시쯤 일어나서 골목마실을 하며 혜광학교로 찾아갈까. 가기 앞서 이곳에서 똥을 누고 가면 좋겠네, 하고 또 이야기를 건다. 이윽고 몸이 내 목소리를 받아들여 아랫배가 슬슬 보글보글한다. 고맙네.


  참말, 몸은 내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받아들인다. 내 마음이 즐거운 꿈을 몸한테 들려주면, 몸은 즐거운 이야기로 빛난다. 내 마음이 슬프거나 궂거나 얄딱구리한 생각을 몸한테 들려주면, 몸은 이 또한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마음가짐이 몸가짐을 낳는다. 마음씨가 몸씨로 이어진다.


  몸을 다스리는 마음이라면, 하늘을 바라보고도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겠지. 오늘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 주렴. 혜광학교 푸름이들하고 골목마실 해야 하거든, 이 아이들이 골목마실 하면서 사진 찍을 때에 손이 시리지 않도록 날이 살살 풀리면 기쁘겠구나. 내 마음 들어 줄 수 있겠지, 어여쁜 하늘아?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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