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되는 꽃

 


  꽃이 피어야 씨앗을 맺는다. 아니, 꽃이 피고 난 다음 꽃가루받이를 해서 꽃이 천천히 시들고 져야 비로소 씨앗을 맺는다. 씨앗을 맺어야 이듬해에 새로 심어서 거둘 수 있다. 꽃이 없다면 씨앗도 열매도 없으며, 씨앗도 열매도 없으면, 우리들 먹을거리는 똑 끊긴다. 씨앗 한 톨에서 싹이 트고 뿌리가 내려 줄기가 오르는데, 이 씨앗이 다시금 꽃으로 피어나고 즐겁게 시들어야, 새로운 씨앗 한 톨과 우리 밥상에 오를 먹을거리가 된다.


  식구들 먹을 밥을 차린다. 고구마랑 당근이랑 감자를 조금 굵게 숭숭 썬다. 세 가지 네모조각 놓인 도마 빛깔이 퍽 예쁘네. 밥 차리는 일손이 바쁘지만, 사진 한 장 찍어 남긴다.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우니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 커서 저희 손으로 이렇게 밥을 차리며 이 빛깔을 새롭게 보기를 바라면서, 또 그때 너희 아버지가 이런 빛깔을 참 좋아하며 사진 한 장 남겼다는 이야기를 슬며시 남기면서. 434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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