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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고 걷고 싶은 꽃길 - 테마여행 그곳에 가면 1
송기엽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사진을 배우는 길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9] 송기엽, 《보고 싶고 걷고 싶은 꽃길》(진선,2005)
- 책이름 : 보고 싶고 걷고 싶은 꽃길
- 글·사진 : 송기엽
- 펴낸곳 : 진선 (2005.10.30.)
- 책값 : 12000원
예쁘게 찍는대서 ‘꽃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꽃은 꽃 그대로 마주하면서 찍어야 비로소 ‘꽃 사진’으로 살포시 담깁니다. 왜냐하면, 꽃은 꽃 그대로 예쁘거든요. 꽃이 어떻게 예쁜가를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한 채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을 찾으려 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고 맙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예쁘다고 느끼는 모습을 찍고 싶으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예쁜 느낌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꽃을 사진으로 찍는 어떤 이는 ‘남한테 보여주려는 생각’을 품습니다. 남한테 사진을 보여주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거 보라구, 잘 찍었지?’ 하며 뽐내는 매무새라 한다면, 제아무리 멋스럽게 찍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자랑하는 사진’이 되고 말아요.
사진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사진 찍는 넋’을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찍는가, 무엇을 찍는가, 어떻게 찍는가, 언제 찍는가, 어디에서 찍는가, 하고 하나하나 짚으며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어떤 넋과 몸가짐과 손길로 사진을 찍으려 하는가를 아울러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진에는 아무 생각이 안 담깁니다. 생각하는 사진에는 생각이 담깁니다.
.. 디지털 카메라의 선택은 주로 촬영할 대상과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에 따른 화소수와 카메라의 크기를 고른다. 꽃만을 소재로 한정짓는다면 400∼500만 화소도 충분하다. 물론 화소가 높아서 나쁠 것은 없으나 경제적인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촬영자의 실력 문제가 아닌 장비의 부실함 때문에 사진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면 적당하다 .. (173쪽)
사진을 배우는 길은, 삶을 배우는 길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할 때에, 어떻게 사진을 찍고 싶은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고 싶으면, 삶을 배울 노릇입니다. 삶을 어떻게 일굴 때에 하루가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를 느껴야 합니다. 어떻게 일구는 삶일 때에 하루가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느낀다면, 어떻게 찍는 사진일 때에 하나하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느낄 수 있어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지 못할 적에는, 사진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사랑이 깃들 때에 삶이 빛납니다. 사랑이 깃들 때에 사진이 빛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참으로 사랑스러운 손길을 건네야 서로 즐겁겠지요. 사랑하는 사진을 찍는다 한다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사진기를 다룰 뿐 아니라, 내 사진기로 바라보는 ‘사람·자연·대상’을 사랑스레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은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삶은 어디에서 배우는가요. 삶은 누구한테서 배우지요. 삶은 왜 배워야 할는지요.
삶을 스스로 튼튼하게 세울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스스로 튼튼하게 세울 줄 압니다.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가다듬을 줄 아는 사람은, 사진을 스스로 씩씩하게 가다듬을 줄 압니다. 삶을 스스로 알차게 보살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진도 스스로 알차게 보살피지 못할 뿐 아니라, 곁에서 누가 도와준대도 이녁 사진은 알맹이가 빠진 쭉정이가 되고 맙니다. 삶을 스스로 곱게 빛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진 또한 스스로 곱게 빛내지 못해요. 둘레에서 여러 비평가들이 손가락 치켜들며 손뼉을 쳐 준다 하더라도, 이런 사진은 텅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 야생화 사진은 다른 풍경사진과는 달리 개화기가 있어 그때를 놓치면 촬영할 수 없으므로 개화기를 미리 알고 촬영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산이나 들 어디나 봄이 오면 온갖 야생화들로 흐드러져, 나서기만 하면 촬영이 가능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그렇게 촬영에 나서면 실패하기가 쉽다. 따라서 전문가의 조언이나 관계서적을 참고하여 가능한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야, 놓치는 야생화 없이 촬영할 수 있다. 한 가지 꽃일지라도 산마다 또는 그 높이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므로, 여러 산의 야생화를 고루 촬영해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한다 .. (176쪽)
학교는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는 교과서 지식을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학교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는 시험을 치러 교과서 지식을 얼마나 잘 외웠는가를 따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제도권학교이기 때문에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이와 달리 참다운 학교라면, 교과서 지식 아닌 삶을 가르칠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제도권학교는 입시지옥에 얽매이는 나머지 ‘사랑을 가르치지 못하는 모습’이라 할는지 모릅니다. 이와 달리 올바른 학교라면, 시험공부 시험지식 졸업장 따위에 끄달리지 않겠지요. 올바른 학교라면,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을 찾아나설 뿐 아니라, 언제나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빛나는 삶을 누리도록 북돋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진학교나 사진교실이나 사진강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사진을 가르친다고 하는 곳에서는 사진을 얼마나 슬기롭게 바라보거나 다루거나 껴안을까요. 사진학교에서는 ‘사진’에 앞서 ‘삶’과 ‘사랑’을 얼마나 따사롭게 바라보거나 슬기롭게 다루거나 넉넉히 껴안을까요.
송기엽 님은 《보고 싶고 걷고 싶은 꽃길》(진선,2005)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1937년에 태어나 1960년대부터 사진 한길을 걸어오는데, 송기엽 님은 어디에서 누구한테서 어떤 사진과 삶과 사랑을 어떻게 배우거나 물려받았을까요. 그리고, 이제 송기엽은 우리들한테 어떤 사진과 삶과 사랑을 어떤 넋과 몸짓과 꿈결로 물려주려고 할까요.
.. 야생화는 자연과 어울려 그 속에서 함께 자란 매력이 으뜸이므로, 조금만 건드려도 그 조화로운 표정을 잃게 된다. 처음 발견한 모습 그대로를 살리는 장소를 찾아야 진정한 야생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 (178쪽)
사진책 《꽃길》은 지리산·명지산·화악산·금산·광덕산·동강·광릉·울릉도·제주도·한라산·북한산·대암산·독도·설악산 같은 곳에서 송기엽 님이 즐겁게 만난 들꽃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어떤 들꽃을 어느 철에 얼마나 만날 수 있고, 들꽃을 만났을 적에 어떻게 사진기를 다루면 한결 예쁘장하게 ‘꽃 사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길을 밝힙니다. ‘꽃 사진 나들이’를 하도록 도와주는 길잡이책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사진책을 보면서 ‘길잡이’ 구실보다는 다른 모습에서 반갑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주말에 틈틈이 사진여행 떠나는 분한테는 길잡이 구실을 톡톡히 할 텐데, 시골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이한테는 이 사진책이 그다지 길잡이 구실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시골사람한테는 따로 ‘들꽃’이 아니거든요. 시골사람한테는 ‘꽃이 피기 앞서’ 나물로 즐겨먹는 ‘들풀’입니다. 시골사람은 해사한 꽃 모양을 보기 앞서 싱그러운 풀빛을 먼저 바라보곤 합니다. 꽃이 피고 나면 못 먹는 풀이 꽤 있으니, 시골사람은 꽃 구경에 앞서 풀잔치를 누립니다. 때로는 자운영꽃이나 광대나물꽃처럼, 꽃이 피더라도 꽃까지 함께 먹는 들풀이 있어요. 사진책 《꽃길》은 꽃을 한결 잘 알아보면서 한껏 곱게 사진으로 담도록 돕는 책이니, 시골사람한테는 썩 도움이 안 된다 할 텐데,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리 도움이 안 될 만한 사진책이라 할 텐데, 들꽃 한 송이 바라보는 눈길과 들꽃 핀 들판을 마주하는 매무새가 살갑구나 싶어서 이 사진책이 즐겁고 반갑습니다.
꽃 사진 잘 찍도록 돕는 이야기보다, 꽃 한 송이 만나기까지 어떤 매무새로 살아갈 때에 ‘사진을 찍는 우리들’이 삶을 즐거이 누릴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꽃길》이라고 할까요. 꽃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사진쟁이 스스로 꽃다운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북돋우는 사진책이라고 할까요. 꽃길을 걷는 우리들이 사진길을 걷는 ‘꽃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끄는 어여쁜 길동무책이라고 할까요.
..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해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과분한 축복이다. 또, 촬영을 위해 야생화를 찾아나서고 어렵사리 발견한 야생화를 이리저리 촬영하면서 느끼는 꽃과의 교감은 마음속에 큰 비밀처럼 간직하고픈 묘미라 할 수 있다 .. (178쪽)
이웃사람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다 다른 마을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꾸리면서 ‘다 다른 얼굴’로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느낍니다. 이와 같아요. ‘이웃꽃’이나 ‘이웃풀’을 사진으로 담으면서도 다 다른 들판 다 다른 숲에서 다 다른 한살이를 누리는 다 다른 빛깔로 다 다른 이야기를 살포시 품어 나누어 주는 모습을 느껴요.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품에 안으며 살아갑니다. 풀과 꽃은 모두 다릅니다. 풀과 꽃은 모두 다른 숲에서 모두 다른 빛깔로 곱게 빛납니다. 구절초라 해서 똑같이 생긴 구절초는 없어요. 괴불주머니꽃이라 해서 똑같은 꽃잎은 하나도 없어요. 똑같이 생긴 사람 없고, 똑같이 생긴 풀 없어요. 골목동네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무렇게나 휘젓고 다녀서는 스스로 못난이가 되고 말듯, 숲이나 들에서 풀과 꽃을 사진으로 찍으며 함부로 휘젓고 다닌다면 스스로 못난이가 되고 맙니다.
작품으로만 예쁘장하게 보인대서 사진이 아름답지 않고, 사진쟁이 한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작품으로 빚는 모습에 마음을 기울이려는 만큼, 사진을 찍는 매무새와 몸가짐과 넋과 얼을 아름답게 돌보아야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삶을 누리면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사랑스러운 삶을 즐기면서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습니다. 착한 사람이 착한 삶을 빛내면서 착한 사진을 찍습니다. 참된 사람이 참된 삶을 밝히면서 참된 사진을 찍습니다.
겉치레로 삶을 흘려 보낸다면, 겉치레 가득한 사진만 나옵니다. 손재주로 삶을 스쳐 보낸다면, 손재주 가득한 사진만 나옵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싶나요. 어떤 사진을 배우고 싶나요. 어떤 사진을 나누고 싶나요.
.. 기술적으로 능숙한 작가가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꽃을 꺾거나 옮겨 촬영한 작품은 그 노력에 비해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결여된 점이 바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야생화에 대한 사랑과 교감이다. 정리되지 않은 그대로, 꽃이 피어 선 본래의 모습 그대로 담아내야 야생화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앵글도 안정이 되고, 사진 속에서도 산이나 들에 핀 야생화의 싱그러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그래서 야생화 촬영에서는 집안에 앉아 꽃을 들고 하는 연구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더라도 아침이슬을 한 번 더 맞는 것이 보다 빠른 공부 방법이다 .. (179쪽)
예쁘게 말한대서 예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쁜 마음이 우러나올 때에 예쁜 말이 됩니다. 목소리만 예쁘장하게 뽑는대서 예쁘장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마음속 깊은 데에서 예쁜 사랑을 길어올릴 때에 비로소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사진을 즐겁게 배워서 아름답게 찍는 한길 걷고 싶은 모든 사진벗들이 즐거우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을 늘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삶이 사진이 되고, 생각이 사진이 되며, 마음이 사진이 됩니다. 꿈이 사진이 되고, 사랑이 사진이 되며, 믿음이 사진이 돼요.
하늘을 품에 안아요. 햇살과 빗물과 눈송이를 품에 안아요. 흙과 바람과 바다와 들을 품에 안아요. 나무와 숲과 멧골과 냇물을 품에 안아요. 맑게 빛나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온누리를 둘러보아요. 밝게 비추는 따사로운 눈빛으로 온누리를 살펴보아요. 삶과 넋과 사진이 한동아리 되도록 사랑춤을 함께 추어요.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