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 얼굴

 


  요 며칠 여러 가지 일이 잇달아 나한테 찾아온다. 왜 찾아올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찬찬히 뿌리를 찾고 짚다가 문득 한 가지 깨닫는다. 내 삶 어느 한 자락이라도 뜻없는 대목이 없는데, ‘군 면제 대상’이던 내가 ‘4급 현역’이 되어 군대에 붙들려 들어가서 보낸 스물여섯 달은 여러모로 내 뒷날 삶을 톺아보도록 북돋우는 길이 되기도 했구나 싶다. 이제껏 못 느낀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나는 강원도 양구 깊디깊은 멧골에서 지낼 적에, 이곳까지 끌려온 ‘내 또래 군인’들 얼굴을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 온 또래들 얼굴빛과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 온 또래들 얼굴빛이 다르다. 도시에서 살았어도 시골스러운 넋인 또래들이랑 시골에서 살았어도 도시스러운 넋인 또래들 얼굴빛이 다르다. 내가 다시 만나고프다고 생각하는 ‘군대 적 동무들’을 돌아보면, 모두 ‘두멧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살다가 군대로 끌려온 아이들’이다. 두멧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내 또래들이 그무렵 열아홉 스물 스물한 살인데,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고 느긋하며 사랑스러운 얼굴빛이었다.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어쩜 여태껏 이를 못 알아채고 살았을까.


  내 낯빛에 그늘이 드리우거나 찡그린 고랑이 생길 적을 떠올린다. 이때에는 어김없이 나 스스로 ‘흙을 안 만진 나날’이 좀 길기 일쑤이다. 내 낯빛에 웃음꽃이 피거나 맑은 기운 퍼질 적을 떠올린다. 이때에는 어김없이 나 스스로 ‘늘 흙을 가까이하며 만진 나날’이기 일쑤이다.


  마을 들길을 걷는다든지, 집 언저리를 돌며 풀을 훑어 밥상을 차린다든지, 자전거 몰며 아이들과 이웃마을 돌아다닌다든지, 이럴 적에 내 얼굴빛은 내가 느끼기로도 환하고 사랑스럽다.


  그래, 내가 반기고 좋아하는 이웃은 시골사람이다. 나 스스로 살아가고픈 내 모습은 ‘시골사람’이다. 시골에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일구는 사람이 되기. 바로 내가 꿈꾸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는 이런 뜻이었네, 하고 오늘 아침 즐겁게 깨우친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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