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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온 듯 다녀 가소서
안재인 글.사진 / 호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럽게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8] 안재인,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호미,2007)
- 책이름 :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 글·사진 : 안재인
- 펴낸곳 : 호미 (2007.4.18.)
- 책값 : 1만 원
비가 주욱 내리고 난 뒤 하늘을 보면 참 파랗습니다. 눈이 송송 내리고 난 다음 하늘을 보면 더없이 파랗습니다. 비는 하늘을 곱게 씻어 주면서 온 들판을 촉촉하게 적시는 일꾼일까요. 눈은 하늘을 맑게 닦아 주면서 온 멧골을 포근하게 감싸는 동무일까요.
눈발 그친 겨울날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봅니다. 밤새 내리던 눈은 찬찬히 녹아 웅덩이가 생깁니다. 밤새 눈밭에서 웅크렸을 멧새는 온 마을 두루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릅니다. 눈이 녹으며 나뭇가지가 홀가분한 나무는 한결 싯푸르게 빛납니다. 한겨울에도 푸른 잎사귀 건사하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는 시골집 마당 한켠에서 예쁜 빛을 나누어 줍니다.
작은아이는 신나게 놀다가 꾸벅꾸벅 잠듭니다. 무릎잠을 재우다가 이부자리에 살며시 눕힙니다. 큰아이도 적잖이 졸린 눈치이지만 작은아이 곁에 누울 생각이 없습니다. 졸립거나 힘들다 하더라도 더 뛰고 더 놀고 더 뒹굴면서 온 하루를 누리고 싶습니다.
.. 하늘 한 뼘 보이지 않을 만큼 머리 위를 빽빽이 둘러싼 동백꽃을 품은 나무 그늘 아래, 이따금 짖어대는 동박새의 음성 공양 받으며 차 공양까지 받으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하였습니다 … 누구에게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이 아름다운 자연의 넉넉함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 (17, 31쪽)
이제 햇살이 온 마을을 두루 감돕니다. 처마에서 눈 녹은 물 떨어지는 소리는 그칩니다. 길바닥을 흐르던 눈 녹은 물도 차츰 말라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또는 땅속으로 스며, 우리 식구 마시는 샘물이 되겠지요.
여름날 비를 맞는 푸른 들풀은 한결 해사하게 빛납니다. 겨울날 눈을 맞는 시든 풀잎은 더욱 노오랗게 빛납니다. 사람들은 으레 꽃을 말하지만, 꽃은 살짝 들렀다 가는 길손이요, 풀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금자리를 지키는 땅임자입니다. 사람들이 먹는 밥이 되어 주는 벼 또한, 볍씨로 영글기 앞서 여러 달 동안 푸르게 빛나는 풀잎입니다. 배추도 무도 감자도 당근도 모두 오래오래 푸르게 빛나는 풀잎이 있기에 열매를 맺어요.
딸기열매는 딸기꽃이 지면서 영그는데, 딸기꽃이 피기까지 딸기잎은 봄볕을 듬뿍 받아들입니다. 감열매는 감꽃이 지면서 영그는데, 감꽃이 피기까지, 또 감꽃이 지고 감열매가 무르익기까지, 감잎은 봄볕과 여름볕과 가을볕까지 두루두루 한가득 받아들입니다.
.. 노란 유채꽃에서 기름을 짜내고, 분홍빛 자운영은 나물로, 농사짓기 위한 거름으로도 이용한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그들은, 꽃밭이 아름답다고 휘젓고 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시골 인심 언제부터 이랬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입니다 .. (40쪽)


빛은 온누리를 밝힙니다. 볕은 온누리를 덥힙니다.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빛살은 나와 내 살붙이 삶을 나란히 밝힙니다.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볕살은 나와 내 이웃과 동무 삶을 함께 덥힙니다. 고운 빛을 눈망울에 담아 바라봅니다. 그윽한 볕을 손길에 담아 어깨동무를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했지만, 가는 눈빛이 맑을 때에 나한테 돌아오는 눈빛이 맑습니다. 가는 손길이 따스할 적에 내 손을 맞잡는 이웃 손길이 따스합니다.
고운 말은 겉치레가 아닙니다. 고운 말은 무럭무럭 자라는 아름다운 넋입니다. 맑은 눈빛은 겉꾸밈이 아닙니다. 맑은 눈빛은 싱그러이 빛나는 어여쁜 사랑입니다. 따순 손길은 겉시늉이 아닙니다. 따순 손길은 너그러이 품에 안는 반가운 마음입니다.
나와 내 아이와 옆지기 모두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밥을 차립니다. 아이들 입맛에만 맞추거나 옆지기 입맛만 살피거나 내 입맛만 따져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다 함께 한솥밥 먹는 즐거운 삶을 헤아리면서 밥을 짓습니다.
들을 지나 우리 집 마당으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을 온 식구 다 함께 쐽니다. 구름 사이로 나오더니 온 마을과 숲과 바다를 스쳐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드는 겨울햇살을 온 식구 다 함께 쬡니다. 나만 혼자 쐬는 바람이 아닙니다. 나만 홀로 쬐는 햇살이 아닙니다. 아니, 바람은 나한테만 찾아들지 않습니다. 햇살은 나한테만 스며들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활짝 열린 넋으로 찾아드는 바람이고 햇살이에요. 곧, 내가 밥을 지어서 함께 먹는다 할 적에도, 나 혼자만 맛나게 먹을 밥이지 않아요. 나를 비롯한 온 식구 즐겁게 웃으며 먹을 밥이에요. 서로서로 기쁘게 숟가락 들고 젓가락 놀리면서 나누는 밥이에요.
.. 언제부터인지 코도 귀도 막아 버리고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탓입니다 … 다행히 좋은 벗이 있어 그 같은 이치를 깨달았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꽃은 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엔 가을대로 꽃이 피어납니다 …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 꺼내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 (53, 54, 102쪽)
사진을 찍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예쁜 마음이 몽글몽글 솟을 적에 사진기를 즐겁게 쥐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하루 내내 함께 어우러지는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나는 이 아이들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도 안 담을 수 있습니다. 늘 바라보더라도 나 스스로 마음속에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으면 사진을 못 찍어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벗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여러 해만에 한 번 얼굴을 보더라도, 서로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나면, 좀 후줄근한 차림새라 하더라도 ‘야, 네 얼굴 참 곱다.’ 하고 말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 굳이 사진을 안 찍기도 합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즐거우니 굳이 사진을 안 찍어도 됩니다. 빙그레 웃음짓고 마주보며 즐거우니 따로 사진을 안 찍어도 됩니다. 꼭 종이에 뽑도록 사진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종이에 뽑은 사진을 벽에 잔뜩 붙여야 어여쁜 사진잔치가 되지 않습니다. 따로 사진첩을 꾸미거나 사진책으로 엮어야 사진빛이 환하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품는 고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가슴으로 마주하는 예쁜 이야기를 사진으로 읽습니다. 가슴으로 품을 만하지 못하면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가슴으로 마주할 만하지 못하면 사진으로 못 읽습니다.


.. 다비장의 불도 거의 꺼져 가고 밤새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도 지쳐 갈 무렵 누군가 “야, 눈썹달이다” 했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평소 달 한 번 쳐다본 적이 없는 듯 달 구경을 했습니다 … 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천둥 번개 치고 비가 와도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닌데 늘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입니다 .. (101, 108쪽)
‘사진작가’가 되어야 사진이 빛나지 않습니다. 나는 ‘사진작가’ 되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쓰는 글이 놀라운 ‘사진비평’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는 하루에 기대어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사랑스레 담고 싶어 ‘사진이야기’를 씁니다. 가슴으로 읽는 사진이 좋아서, 가슴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글에 담기에 ‘사진이야기’입니다. 어떤 이론을 빌어 이래 따지거나 저래 칭찬해야 비평이나 평론이 되지 않아요.
즐겁구나 하는 마음이 들 때에 비로소 즐거운 사진입니다. 아름답구나 하는 마음이 샘솟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남들이 부추기거나 손뼉친대서 즐겁거나 아름답지 않아요. 나 스스로 가슴 깊이 느끼는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에요.
퍽 많은 이들이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장미꽃이 아름다울 수 없어요. 내가 들판에서 장미나무 한 그루 마주하면서 장미꽃 들여다보고 꽃잎 풀잎 살그마니 쓰다듬어 꽃내음 풀내음 맡을 적에 ‘이야 참 좋네’ 하고 느끼면 비로소 아름다움이 자랍니다. 살구꽃도 능금꽃도 포도꽃도 찔레꽃도 딸기꽃도 매화꽃도 감꽃도 석류꽃도 모두, 내가 스스로 마주하며 느끼는 이야기에 따라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자라나요.
‘여기 보셔요. 이 들꽃 예쁘지요?’ 하고 누군가 알려주기에 아하 그러네, 하고 들꽃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요. 때로는 살가운 길동무가 내 둘레 아름다움을 찬찬히 짚어 줄 수 있어요. 이때에는 고맙다 여기며 ‘그럼 이 들꽃 사진으로 담아 볼까?’ 하고 사진 한 장 찍으면 즐거워요. 그러고 나서 다음에는 ‘내가 알아볼 들꽃은 어디에 곱게 피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찬찬히 살피면 되지요. 내 삶터 내 삶결을 즐거이 가다듬으면서 내 ‘삶눈’을 예쁘게 떠야지요.
.. 나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하루에 여덟 군데의 절과 절터를 다닌 적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 볼 것을 미리 정해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말해 주는 것도 없이, 계절마다 어떤 꽃이 피는지, 밤 풍경은 어떠한지, 모든 것을 내 스스로 보고 느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하고 싶던 일들 중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술 마시고 노는 것 빼고는 별다르게 한 일 또한 없습니다. 술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처럼 믿었고, 으레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익숙해져 갔습니다 .. (146, 147∼148, 153쪽)

사진을 찍는 길이나 사진을 읽는 길은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럽게’라고 느낍니다. 나는 사진을 처음 찍던 날부터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며 바지런히 사진을 찍는 오늘까지, 늘 이 대목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럽게’를 생각합니다. 글을 쓸 적에도 이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밥을 지어 차리고, 빨래를 해서 널며, 네 식구 서로 손 맞잡고 들마실 다닐 적에도 노상 이 세 가지를 생각해요.
이 아이들은 얼마나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 바라보는 어버이인 나는 또 얼마나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운 하루를 신나게 누리느냐고 생각해요.
사진기로 들여다보이는 ‘피사체 또는 취재원 또는 모델 또는 온갖 모습’만 예쁘거나 착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나(사진 찍는 사람)’도 예쁘거나 착하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과 사진을 찍는 사람은 서로서로 예쁘며 착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사진 하나 태어나는 밑바탕은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넋이라고 느껴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기에 시나브로 사진이 태어나고, 사진이 퍼지며, 사진이 빛으로 거듭나면서 숱한 이야기를 낳는구나 싶어요.
어떤 예술이 될 까닭 없는 사진이에요. 왜냐하면 ‘사진으로 담기는 모습’은 굳이 예술이 될 까닭 없거든요. 구름은 스스로 예술이 아니에요. 구름은 구름이에요. 대나무는 스스로 예술이 아니에요. 대나무는 대나무예요. 구름이나 대나무를 찍어 ‘놀라운 예술사진이 태어났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떤 솜씨를 부려서 찍기에 예술사진이 된다면, 사진이란 그야말로 덧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을 사진으로 찍으니 놀라운 사진이 될까요? 어떤 유명인사를 사진으로 담으니 훌륭한 사진이 될까요? 이제 갓 절집에 들어간 스님을 찍어도 놀라운 사진이 돼요. 사진을 찍은 사람과 사진으로 찍힌 사람이 서로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운’ 만남으로 아끼며 즐기는 삶이 있으면, 놀라운 사진이 됩니다. 내 아이를 찍고 내 이웃을 찍으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진이 돼요. 사진을 찍은 사람과 사진으로 찍힌 사람이 저마다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운’ 삶을 북돋우면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면, 훌륭한 사진이 됩니다.
이웃이 되어야 찍는 사진입니다. 구경꾼이 되면 못 찍는 사진입니다. 벗이 되고 한식구가 되어야 찍히는 사진입니다. 남남으로 동떨어진 채 말 한 마디 섞지 않고서 어떤 사진이 될까요.

.. 언론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나라 구석구석의 좋은 곳을 소개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제 이곳만은 망그러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뽐내듯이 그곳을 몹시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때, 그 이중적 생각과 행동이 영 못마땅합니다 .. (220쪽)
안재인 님이 글과 사진으로 빚은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호미,2007)를 읽습니다. 안재인 님은 어떤 작품을 빚으려고 어느 멧골 어느 절집을 드나들지 않았습니다. 안재인 님 마음을 북돋우는 어떤 기운을 느껴 꾸준히 어느 멧골 어느 절집을 드나듭니다. 꼭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한다든지, 꼭 이곳을 어찌저찌 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쥐지 못합니다. 다만, 때때로 ‘그럴듯한 모습’을 ‘멋지게’ 찍으려고도 해 보지만, 그럴듯한 모습을 찍으려고 하면, 말 그대로 ‘그럴듯한 모습’으로 그쳐요. 멋지게 찍으려고 하는 사진은 참말 ‘멋지게’ 찍혀요. 멋진 사진은 멋집니다.
그러나, 멋진 사진이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멋진 사진은 그저 멋질 뿐, 사랑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안재인 님은 꾸준히 마실을 하면서 ‘마실’이 마실 아닌 ‘삶’이라고 시나브로 느낍니다. 처음에는 마실을 다니며 찍던 사진이지만, 차츰차츰 ‘마실 사진’ 꺼풀을 벗고 ‘삶 사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들풀 한 포기하고 벗이 되어 사진을 찍으면 ‘내가 찍은 들풀 사진’은 벗님을 살가이 느끼는 기운이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들풀 한 포기를 멋스러이 보여주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으면 늘 ‘남한테 멋스러이 보여주는 모습(풍경)’으로 그치기만 합니다.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하고 노래하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면, “사랑스레 찾아오소서” 하고 노래하는 어깨동무사랑을 나란히 느낄 수 있겠지요. 그저 다녀가려면 아니온 듯 다녀가야지요. 이웃이 되고 싶으면 사랑스레 찾아와야지요. 이른바 여행을 하고 싶으면 쓰레기를 남기지 말고 “아니온 듯 다녀갈” 일이요, 내가 아이들과 뿌리내리며 살아가고픈 마을에서는 “사랑스레 하루를 일구며” 살아갈 일입니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