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밟기

 


  올 2012년 5월, 경기도 파주 책도시로 온식구 나들이를 갔을 적, 이른 5월인데에도 얼마나 후끈후끈 덥던지 무척 고단했다. 나도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도시라는 곳이 5월 첫머리조차 이렇게 후덥지근하며 더운 줄 미처 몰랐다. 풀과 흙 있을 자리마다 시멘트랑 아스팔트로 덮으니까, 이러면서 자동차는 끝없이 달리고, 건물은 높이높이 솟으니까, 고작 5월인 봄이면서도 여름 못지않다 할, 아니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은 찌는 더위가 온 도시를 뒤덮는구나 싶었다.


  공원이랄 수는 없는 ‘나무 심은 데’ 풀은 따로 누가 건사하지 않아 아무 풀이나 멋대로 자란다. 아무 풀이나 멋대로 자라는 모습이 반가워 어떤 풀이 있는지 들여다보며 살살 쓰다듬어 본다. 그런데, 이곳 파주 책도시 여느 풀은 힘알이가 없고 키가 작으며, 뜯어서 먹을 때에 맛이 썩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논밭이기는 했을지라도 책도시를 만든다며 모두 파헤치고 뒤집어서 만든 흙땅 풀밭이기 때문일까. 바로 옆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자동차 줄줄이 늘어서기 때문일까.


  그래도 풀밭이니 좋다. 풀밭이라서 반갑다. 나도 옆지기도 아이도, 이 풀밭을 거닐며 발을 쉰다. 풀밭을 밟으며 풀내음 맡으니 비로소 숨통을 튼다. 딱 2분쯤 풀밭 밟기를 할 수 있었는데, 딱 2분 걷고는 풀밭길이 끝났지만, 이나마 있으니, 이곳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는 사람도 아주 메마르거나 숨이 막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4345.1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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