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책읽기
나도 모르게 시골로 깃을 틀었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내 마음이 부르는 대로 왔다고 느낀다. 다만, 내가 시골로 오기까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또 더 큰 도시로 나아가 살림을 꾸리고 이래저래 지낸 다음, 비로소 시골로 오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도시에서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도시에서 내 나름대로 사람답게 살아간대서 나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드리우지는 못했구나 싶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환한 불빛이었다 하더라도 내 곁에 풀과 나무와 숲은 없었으니까.
다른 한편으로 돌아보면, 나는 나 스스로 너무 여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내가 머물던 도시에서 더 환하게 빛날 만한 일을 못했다. 내 둘레에 풀과 나무와 숲이 없으면, 내가 풀과 나무와 숲을 부르면 된다. 내 마음속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빛살과 볕살로 풀과 나무와 숲을 부르면 되는걸. 막상 도시에서 지낼 적에는 이 대목을 깨우치지 못했다. 시골로 드리우는 삶을 여러 해 보내고 아이들이랑 복닥이면서 날마다 차츰차츰 깨닫는다. 그래, 내가 스스로 빛이 되어 환하면 되잖아.
마음모으기. 마음열기. 마음닦기. 마음찾기. 마음빚기. 마음누리기. 마음놀이. 마음삶. 하나하나 짚는다. 내가 아는 모든 말을 짚고, 내가 모르는 모든 말을 짚는다. 나는 스스로 알려 하면 다 알 수 있고, 나도 내 이웃도 누구나 똑같이 ‘스스로 잘 모르겠구나’ 하고 여기면 끝까지 ‘잘 모르는 채’ 스스로 눈을 감고야 만다. 할 수 없는 일이 없듯, 알 수 없는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즐거이 하면 어여쁜 나날로 삶이 피어나듯, 알 수 있는 꿈을 곱게 사랑하면 아리따운 생각이 하나둘 피어난다. 내가 스스로 풀이 되자. 내가 스스로 나무가 되자. 내가 스스로 숲이 되자. 내 몸에서 샘솟는 숨결이, 푸르며 싱그러운 빛이 되도록, 하루를 맑게 누리자. 이제부터는 내가 모르는 책읽기 아닌, 내가 잘 알며 슬기롭게 빛내는 책읽기를 하자. 4345.1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