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빛깔 책읽기

 


  마당 가장자리 조그마한 텃밭에서 스스로 씨를 내어 스스로 자라는 들풀 하나 겨울을 맞이하며 바삭바삭 마른다. 누렇게 시들기 앞서 씨앗을 맺고, 바람이 불 적마다 천천히 씨앗을 퍼뜨린다. 나즈막한 겨울햇살 우리 집 마당으로 스며들 적에 누렇게 말라죽은 풀포기로도 드리운다. 아이들 뛰노는 마당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문득 풀씨를 깨닫는다. 너희는 참 고운 빛으로 그 자리에 서는구나. 너희가 높다란 여름햇살 받으며 푸른 잎사귀 뽐낼 적에도 그 자리에 서고, 이렇게 추운 겨울날 나즈막한 햇볕 쬐며 씨앗을 흩뿌릴 적에도 그 자리에 서네. 꽃이고 풀이고 모두, 씨앗 한 알에서 비롯해 새싹 한 줌으로 자라고, 뿌리 하나 내리면서 줄기 씩씩하게 올라, 크고작은 꽃으로 흐드러진 다음 알록달록 저마다 다른 씨앗으로 다시 마무리될 테지. 너희가 우리 식구와 함께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니, 나는 자그마한 씨앗부터 새싹과 풀줄기와 잎사귀와 꽃에다가, 마지막 누렇게 시든 몸뚱이에 어리는 빛살까지 누릴 수 있구나. 4345.1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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