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 책읽기 2
살림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지내며 버스를 탄다. 혼자 살던 때에는 버스 탈 일이 매우 드물었다. 홀몸으로 움직일 적에는 20∼30킬로미터쯤 되는 길이라면 으레 자전거를 몰았고, 40∼50킬로미터까지도 자전거로 오가곤 했다. 자전거로 다니면, 버스에서는 누리거나 맛볼 수 없는 너른 이야기를 시원스러운 바람과 함께 온몸으로 누릴 수 있으니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재미나다. 봄에는 봄을 느낀다. 겨울에는 겨울을 느낀다. 그래서, 어느 날은 신나게 자전거를 몰며 마실을 다닌다. 또 어느 날은 자전거를 놓고 천천히 거닐며 마실을 다닌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살 적에는 웬만한 길은 그냥 걸어서 다녔다. 10킬로미터쯤 걸어서 가더라도 골목골목 샅샅이 누비면서 여러 시간에 걸쳐 찾아갔다. 시간이 넉넉해서 걸었다기보다,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 걸었다. 새벽에, 아침에, 낮에, 저녁에, 때마다 달라지는 삶빛을 느끼고 싶었으며 누리고 싶었다.
살림을 이루어 아이를 낳은 뒤, 먼길 걷기란 퍽 벅차다. 그래도 씩씩하게 걸으며 산다.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짐이 많거나 버스때하고 안 맞으면 택시를 부른다. 인천을 떠나 시골로 옮긴 뒤에는 군내버스를 즐겨탄다. 높고낮은 멧자락에 띄엄띄엄 마을이 이루어지는 시골자락에서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다녀도 즐거운데, 군내버스를 타면 더 멀리 다닐 수 있고, 군내버스 지나가는 숲길도 제법 싱그럽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저 먼 곳을 바라본다. 군내버스가 어떤 길을 거쳐 우리한테 오는가 지켜본다. 시골에서 버스를 몰며 일하는 이들은 이 길에서 무엇을 느낄까 헤아려 본다. 도시에서 버스를 몰며 일하는 이들은 그 길에서 무엇을 보거나 생각할까 곱씹어 본다.
꽉 막히거나 온갖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에서 버스를 몰아야 하는 이들은 어떤 마음밭이 될까. 막힐 일 없을 뿐더러, 풀과 꽃과 나무와 숲과 들과 바다와 냇물을 두루 마주하며 파랗게 눈부신 하늘에서 드리우는 포근한 햇살 머금는 시골에서 버스를 모는 이들은 어떤 마음자리가 될까. 끔찍한 짓, 못된 짓, 모난 짓, 몹쓸 짓, 막된 짓, 멍청한 짓, …… 이런저런 슬프거나 아픈 짓이 자꾸 생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돈바라기를 하기 때문 아닌가. 숲을 버리거나 잃으면서, 풀내음을 잊거나 잃으면서, 꽃빛을 놓치거나 모르면서, 사람들 마음이 자꾸 메마르거나 팍팍해지지 않을까. 도시에서 지내는 벗님을 불러, 시골마을 군내버스를 함께 타고 싶다.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