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사진을 이루는 씨앗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44] 한설희, 《엄마, 사라지지 마》(북노마드,2012)

 


- 책이름 : 엄마, 사라지지 마
- 사진·글 : 한설희
- 펴낸곳 : 북노마드 (2012.11.15.)
- 책값 : 24000원

 


  (1) 삶을 이루는 씨앗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 작은 집 조그마한 텃밭에는 부추가 스스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부추뿐 아니라 온갖 풀이 씩씩하게 돋는데, 우리가 심지 않았고 거두지 않았으나, 부추는 저희 스스로 씨를 맺고 뿌리를 내리며 줄기를 올립니다.


  지난가을, 부추꽃 오래오래 들여다보면서, 우리 식구가 인천 골목동네 작은 집에서 살던 일을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이웃 골목집 꽃그릇이나 텃밭에서 자라는 부추꽃만 구경했는데, 올해에 비로소 우리 집 텃밭 부추꽃을 보았거든요. 꽃으로 본다는 꽃망울 소담스러운 부추꽃도 있다 하는데, 우리 집 텃밭 부추꽃은 앙증맞도록 조그마한 꽃망울이 잔뜩 달립니다. 한 달 가까이 꽃망울 꽃내음을 나누던 부추꽃은 천천히 시들었고, 차츰 몽우리가 단단해지면서 ‘열매’를 알차게 맺습니다. 그러니까, ‘씨’를 맺어요.


  부추풀 사이에 꽃대가 올라 꽃이 피고 나면, 꽃은 오래도록 흐드러져 한가을 나비와 벌과 벌레를 부르고, 나비와 벌과 벌레가 조그마한 부추꽃 가루를 맛나게 먹은 뒤에는, 새까맣고 야무진 열매를 안은 씨방으로 바뀝니다. 씨방은 천천히 벌어집니다. 천천히 벌어지며 까만 씨가 톡 톡 톡 떨어집니다. 바람 불면 톡, 나비가 건드려도 톡, 사람이 손가락으로 살짝 쳐도 톡, 하고 떨어집니다.

  흙으로 떨어진 부추씨는 천천히 흙 품에 안겨 뿌리를 내립니다. 이듬해 새봄에 다시금 새싹을 틔우려고 겨우내 온몸을 따순 사랑으로 덥힙니다.


.. 북녘 외딴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란 엄마. 아버지와 결혼한 뒤 뭍으로 왔으나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섬 같은 방 안에 갇혀버린 엄마. 그 방에는 거울에 고인 슬픈 세월만이 출렁인다 ..  (5쪽)


  부추씨가 제법 떨어지고 난 뒤에도 퍽 많이 남습니다. 우리 집으로 놀러온 먼먼 도시마을 이웃한테 부추씨를 쉰 알 남짓 털어 하얀 봉투에 담아 선물로 내밉니다. 남녘땅 부추라 저기 위쪽으로 많이 올라가는 인천에서도 자랄는지 모르지만, 사랑을 실어 심으면 잘 되리라 믿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들어 드센 바람이 붑니다. 차가운 겨울비가 내립니다. 고흥에도 함박눈이 쏟아집니다. 그러다가 맑은 햇살 다시 찾아들고, 또 찬바람 불다가는, 이내 따순 바람이 살포시 붑니다.


  문득 궁금해 누렇게 바싹 마른 부추풀포기 앞에 섭니다. 쪼그려앉습니다. 씨방을 들여다봅니다. 누렇게 마른 꽃대가 꺽여 쓰러진 녀석 많은데, 아직 까만 씨가 다 안 떨어졌습니다.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땅바닥으로 톡톡 떨굽니다. 다시 하얀 봉투를 꺼내 까만 부추씨를 얼마쯤 갈무리합니다.


  내가 심지 않은 부추이지만, 내가 이 집에서 살아가기에 이 부추를 누립니다. 부추씨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기울입니다. 그동안 내가 먹은 부추는 누가 어느 땅에 어떤 씨앗을 뿌려서 거둔 부추일까 궁금합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부추씨를 뿌렸을까요.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건너온 부추씨를 뿌렸을까요. 아니면, 부추풀포기를 아예 중국이나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꺾어 가져왔을가요. 한국땅 시골마을에서 거둔 부추가 온 나라 가게마다 예쁘장하게 비닐에 싸인 채 놓이는가요. 이 나라에서 부추농사를 지어 가게에 내다 파는 분들은 부추를 어떻게 건사해서 거둘까요.


.. 하루가 다르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판교를 찍으면서도 나는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흔적 없이 사라질 존재, 엄마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  (29쪽)


  가게에서 풀(푸성귀)을 사든, 읍내 저잣거리에서 풀을 사든, 나는 이 풀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심어 어떻게 갈무리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어떤 씨앗에서 이 풀이 돋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참말 씨앗에서 돋은 풀이 맞는지도 모르며, 어떤 흙에서 어떤 햇살이나 바람이나 냇물을 먹고 자랐는지조차 몰라요. 어쩌면 비닐집에 갇혀 햇볕 아닌 뜨거운 기운만 먹고 자랐을는지 몰라요. 빗물 아닌 수도물만 마셨을는지 몰라요. 여느 들바람이나 멧바람은 한 줌조차 못 먹었을는지 몰라요.


  수박도 참외도 오이도 가지도 모두 이와 같아요. 딸기나 포도나 애호박이나 무나 배추는 얼마나 들바람이나 멧바람을 머금으며 자랐을까요. 우리가 먹는 쌀은 얼마나 많은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먹었을까요. 어느 시골에서 어떤 빗물을 마셨을까요. 논 곁에 공장이나 돼지우리나 소우리는 없었을까요. 논 위로 송전탑 전깃줄이 지나가지는 않았을까요. 논 둘레에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가게에서 풀이나 곡식이나 열매를 사다 먹으며 살아온 셈입니다. 내가 스스로 흙을 돌보며 먹을거리를 거두지 않으면, 나는 참말 내 몸에 ‘어떤 숨결’을 받아들이는지 하나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랑이 깃들었는지 모를 목숨(풀과 곡식과 열매)을 아무렇게나 먹는 셈이에요. 나는 내 작은 텃밭에 사랑을 쏟아 푸성귀를 얻는다고 하지만, 가게에 푸성귀를 내다 파는 이들도 똑같이 ‘사랑을 쏟아’ 푸성귀를 갈무리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돈을 더 벌 생각으로 온갖 비료나 항생제나 풀약을 잔뜩 쓰지는 않았을까 되새겨 봅니다.


.. 세탁기가 생긴 뒤에도 엄마는 당신의 손으로 옷을 빨았다. 청소기가 생긴 뒤에도 엄마는 당신의 손으로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했다 ..  (101쪽)


  작은 텃밭에서 자라는 우리 집 부추는 키가 작습니다. 그런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 부추풀은 한 주먹 꺾어서 한 상 차리면 냄새가 좋고 맛이 훌륭했어요. 그저 끼니마다 한 주먹이면 넉넉했어요.


  사람들은 가게에서 으레 빛깔 곱고 알 굵은 열매나 곡식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사꾼들이 비료와 항생제와 농약을 안 쓸 수 없다고 말해요. ‘머나먼 옛날부터 씨앗을 받아서 심어 기른 곡식과 열매’는 알이 그다지 안 굵고 빛깔이 그다지 안 곱다고 하거든요.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굵고 빛깔 곱다는 열매나 곡식은 ‘배가 터지도록 많이 먹어’도 배가 찬다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알 작고 빛깔 안 곱다는 ‘옛날 옛적부터 이어온 우리 씨앗’으로 얻은 열매나 곡식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고 오래도록 배가 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속이 쓰리거나 아픈 일이 없어요.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이러한 밥삶을 몸으로 누리면서 깨닫고 생각합니다. 가장 맛난 밥은 1급 요리사가 차리는 1급 재료로 빚은 1급 밥상은 아니로구나 싶어요. 내가 사랑 담은 땀을 흘리며 거둔 먹을거리로 손수 지은 밥이야말로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이 즐거이 누릴 밥이로구나 싶어요. 따지고 보면 ‘1급’이라고 하는 등급도 허깨비예요.


..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엄마가 원한 것은 그저 내가 함께 마주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  (155쪽)


  삶을 이루는 씨앗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일구는 씨앗이란 무엇인가요.


  내 몸이 되어 주는 고마운 풀과 열매와 곡식을 떠올립니다.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할 풀과 열매와 곡식을 먹으면서, 나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숨결을 건사합니다. 푸른 기운을 먹으며 푸른 생각을 꽃피웁니다. 푸른 바람을 마시며 푸른 사랑을 나눕니다. 푸른 햇볕을 죄며 푸른 눈빛으로 환할 수 있습니다.

 

 

 

 

 

 


  (2) 사진을 이루는 씨앗


  한설희 님이 당신 어머님을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엄마, 사라지지 마》(북노마드,2012)를 읽습니다. 한설희 님은 아주 늦었다 싶은 나이에 당신 어머님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여생에 생각이 미치자, 늦기 전에 엄마의 자취를 남겨야겠다는 갈망이 일었다. 엄마에게 갈 때마다 음식과 카메라를 들고 갔다. 다 늙은 사람을 왜 찍느냐고 손사래를 휘휘 치셨다. 세수도 안 하고 입은 옷 그대로인데 귀신 나올 일 있느냐고 하셨다 ..  (25쪽)


  책에 실린 글을 읽고, 책에 담긴 사진을 읽습니다. ‘무엇이 늦었다고 생각하는’지 적잖이 알쏭달쏭합니다. 한설희 님이 ‘사진을 다시 배운 날’이 늦었을까요. 한설희 님이 이녁 어머님을 찍은 날이 늦었는가요.


  한설희 님 어머님이 흙으로 돌아간 뒤에 ‘사진을 찍는다’고 할는지라도 하나도 안 늦습니다. 어머님 묻은 무덤으로 찾아가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흐름을 찍어도 ‘사진’이거든요. 이녁 어머님 무덤을 찾아간 식구들 모습을 찬찬히 적바림해도 ‘사진’이에요. 더 젊을 적 어머님 모습을 찍어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삶이고, 사진은 사랑이며, 사진은 이야기예요. 사진기를 손에 쥔 나 스스로 삶을 누릴 때에 사진을 누려요. 사진기를 손에 잡은 나 스스로 사랑을 나눌 때에 사랑을 나눠요. 사진기를 손에 든 나 스스로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사진 한 장에 이야기를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설희 님은 아직 ‘철부지’라 할 만합니다. 아흔 넘은 어머님 앞에서 응석을 부리는 철부지로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아흔 어머님 앞 일흔 가까운 딸내미 철부지라고 할까요.


  철부지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철부지입니다. 어머님이랑 하루 한 시간이라도 더 가까이 붙어서 지내고 싶은 철부지입니다. 어머님 모습을 한결 곱게 떠올리고 싶으며, 꾸밈없는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싶은 철부지예요.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  (51쪽)


  사진을 이루는 씨앗은 바로 내가 심습니다. 내 어머니나 내 오빠가 심어 주지 않습니다. 사진을 이루는 씨앗은 언제나 내가 심습니다. 내 동무나 내 이웃이 심어 주지 않아요. 사진을 이루는 씨앗은 어디에서나 내가 심습니다. 내 스승이나 내 길라잡이가 심어 주지 않는답니다.


  “사진찍기는 서로 바라보기”라고 말하자면, 사진기 앞에 선 사람만 나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아요. 사진기를 든 나도 이녁을 바라보아야 해요. “나부터 스스로 바라볼 줄 알아야” 사진을 찍어요. 저쪽에 있는 사람이 나를 안 바라보더라도, 나는 즐겁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앉았더라도, 나는 따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그렇잖아요.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에 피어나는 사랑이듯,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질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이 만나면서 싹트는 꿈이듯, 마음이 얼크러지면서 빛나는 사진입니다.


.. 뷰파인더 속에 담긴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엄마가 예쁘다고 느낀다 ..  (113쪽)


  한설희 님 어머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남겼기에 ‘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안 찍었더라도 사라질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설희 님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어머님 한삶’이 또렷이 아로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지구별 어느 누구도 사라질 일이 없습니다. 값없는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슬프게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아요. 원자폭탄이 터지고, 큰물결이 덮치며, 땅이 쩍 갈라진다 하더라도, 우리 넋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뚱이는 흙으로 돌아간다 하겠지요. 숨이 멎어 더는 꼼짝을 안 한다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넋은 언제까지나 싱그러이 숨쉽니다. 우리 얼은 한결같이 푸르게 살아갑니다.


  내 마음밭에 씨앗을 뿌렸기에 싱그러이 숨쉽니다. 내 마음자리에 씨앗을 건사했기에 푸르게 살아갑니다.


  사진을 이루는 씨앗을 생각해 보셔요. 어머님이 아주 늙어 아예 일어서지도 못한다 하더라도 한설희 님은 당신 어머님 모습을 얼마든지 곱거나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그윽하거나 고즈넉하거나 홀가분하거나 느긋하거나 넉넉하게 담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한설희 님 마음이 곱거나 예쁘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그윽하거나 고즈넉하거나 홀가분하거나 느긋하거나 넉넉하면 돼요.

  씨앗 한 톨은 흙에 깃들어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씨앗 한 톨은 햇볕이랑 바랑이랑 빗물만 먹지 않아요. 씨앗을 심은 ‘사람’이 살포시 담은 ‘사랑’을 함께 먹고 자랍니다.


  사랑받아 흙 품에 안긴 씨앗은 사랑 못 받은 채 흙 품에 안긴 씨앗보다 씩씩하며 튼튼하게 자랍니다. 사랑받으면서 햇볕을 먹는 씨앗은 사랑 못 받으면서 햇볕을 먹는 씨앗보다 야무지며 알차게 자라요.


  내 보금자리 자그마한 꽃그릇에서 자라는 꽃잎을 살살 어루만져 보셔요. 꽃잎은 더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자동차 수없이 오가는 찻길이라 하더라도, 길가에서 배기가스 들이마시며 콜록대는 나무를 말없이 쓰다듬거나 꼬옥 안아 보셔요. 배기가스 때문에 잎사귀 시커멓게 찌든 나무가 파르르 떨면서 아주 좋아해요.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만 ‘안아 줄 때’에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안아 주면 좋아해요. 풀과 꽃과 나무도 우리가 안아 주면 무척 좋아해요. 따순 품에서 흐르는 사랑을 느끼거든요.


  무슨 말인고 하면, 한설희 님이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손가락 마디마디 사랑을 실어 단추를 찰칵 누르’면, 흑백사진을 찍건 칼라사진을 찍건 따순 사랑이 살포시 흐릅니다. 이녁 어머님 누운 자리에 따순 사랑이 살그마니 옮겨 갑니다. 사랑 없이 기계처럼 철컥철컥 단추를 눌러대었으면, 차디찬 마음이 자꾸자꾸 퍼지겠지요.


.. 사진을 찍기 전, 내게 잘 만든 사진이란, 숙련된 기술과 포장된 이미지로 세상의 풍경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고, 어느덧 손에 익을 무렵, 좋은 사진은 정련되고 노련한 기술로 피사체를 다루는 데서 나오지 않고, 그 대상을 혼신의 힘으로 사랑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았다. 대상과 그 주변을 치밀한 계산으로 제어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여는 데서 대상과 세상의 사연이 모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  (189쪽)


  우리는 예술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큐작품을 빚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사랑하면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온마음 기울이는 따스한 사랑으로 이루는 사진입니다. 삶을 이루는 씨앗, 사진을 이루는 씨앗, 여기에 꿈을 이루는 씨앗을 곰곰이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내 사진 한 장은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내 사진 한 장은 어떤 평론가한테 칭찬을 들어야 하지 않아요. 내 사진 한 장은, 사진을 찍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이야기꽃이 되면 넉넉해요. 내 사진 한 장은, 나와 사진기를 마주보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푸나무하고 살가운 동무 되어 환한 웃음꽃 피워내는 빛줄기가 되면 흐뭇해요. 마음을 열어 사진을 찍어요. 4345.12.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으로도 보여주지만, 책 편집에서 '사람 얼굴 가운데에 씹히도록' 한 모양새는 많이 아쉽다. 사진책을 편집할 때에 잘 살필 대목인데, 적잖은 편집자들이 이 대목을 자꾸 놓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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