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2.18.
: 안기고 싶은 아이
- 겨울날 자전거를 탄다. 그런데 오늘도 내 벙어리장갑 어디 있는지 못 찾는다. 하는 수 없이 얇은 실장갑을 낀다. 이 장갑이라도 끼어야지, 이제 실장갑조차 안 끼고 겨울자전거로 달리면 손이 매우 시리다.
- 아버지가 자전거수레를 마당으로 내려놓으니, 작은아이는 벌써 낌새를 채고는 얼른 타겠다고 부산을 떤다. 신도 안 꿰고 수레부터 타겠다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자 신부터 신자. 앉아 봐요.” 하고 이르면서, 왼발 오른발 찬찬히 신을 신긴다. 겉옷을 단단히 여민다. 자리에 앉힌다. 작은아이 앉히고서 큰아이 앉힌다. 큰아이는 머잖아 자전거수레에 더는 못 타리라 느낀다. 벌써 큰아이 머리는 수레 꼭대기까지 닿는걸. 작은아이가 세 살이 되고 큰아이가 여섯 살 되면, 큰아이 탈 자전거는 따로 붙여야지 싶다. 큰아이야, 네 다리가 더 길면, 아버지 자전거 뒤에 새로 네 외발자전거 붙일 수 있을 텐데.
- 서재도서관에 살짝 들른다. 작은아이는 퍽 졸린 눈치이지만, 서재도서관에서 한바탕 신나게 뒹굴면서 뛰논다. 졸립고 힘들어도 노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온힘 바쳐서 논다. 참말, 이런 모습이 아이들다운 힘이라고 할까. 우리 어른도 아이들마냥 어떤 일을 할 때에 이렇게 온힘 쏟아 즐긴다면 아주 아름다운 빛이 온누리에 드리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우체국으로 달린다. 서재도서관에서 나와 큰길로 나오니 작은아이는 이내 꾸벅꾸벅 졸려고 한다. “안 돼. 안 돼. 아직 자지 마. 우체국 가는 길에 잠들면, 집에 닿을 때에 깨잖니. 우체국에서 조금 더 뛰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야지.” 일부러 자전거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달린다. 꾸벅꾸벅 졸던 작은아이가 ‘이게 뭐 하는 짓인고?’ 하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잠들려다 깨다가 되풀이한다.
- 소포를 모두 부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면소재지 벗어날 무렵 있는 빗돌 둘레 동백나무를 보니 위쪽과 아래쪽에 고운 꽃송이 소담스레 벌어졌다. 큰아이도 동백꽃송이를 알아본다. 다섯 살 큰아이는 장미꽃과 동백꽃을 잘 가려서 알아본다.
- 집으로 가는 길에 두 아이 모두 조용하다. 작은아이는 잠들어서 조용하고, 큰아이는 맞받아치는 바람이 드세서 고개를 폭 숙이느라 조용하다. 수레 덮개를 닫는다. 아버지는 맞바람에 진땀을 흘리며 달리고, 큰아이는 바람 안 맞으며 조용히 등을 뒷판에 기댄다. 그야말로 땀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맞바람을 이기며 자전거수레를 끌자면 힘을 매우 많이 써야 한다. 몇 킬로미터 안 달린다 하지만, 손과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데, 작은아이야 잠들었다지만, 큰아이가 자는 척한다. 요 녀석. 네가 그런다고 모를 줄 아니. 큰아이가 ‘나도 잠들었으니 안아서 방에 들여 주라’ 하는 시늉이다. 쳇. 귀여움을 떨기는!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