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2.16.
 : 봄꽃 미리 보는 겨울

 


- 맑은 햇살 여러 날 이어진다. 이 좋은 날 ‘마실’ 나가면 참 좋은데, 이 좋은 볕에 빨래와 이불을 말리자 생각하며 바지런히 집안 곳곳 쓸고 닦는다. 허리가 휜다. 그러나 이 겨울볕을 지나칠 수는 없잖아. 이듬날도 오늘처럼 맑기를 빌며, 이듬날 마실을 나가면 되리라 생각한다.

 

-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뭐 하고 그러니 등허리가 쑤신다. 드러눕고 싶다. 그렇지만, 작은아이 눈가 벌건 모습이 졸음 한 가득이다. 어떻게 재우면 좋을까. 오늘은 서재도서관에 들러 책 갈무리 할 일이 있으니, 자전거 끌고 나와 볼까.

 

- 자전거마실을 하려고 작은아이 불러 양말 신기고 옷을 입힌다. 큰아이는 벌써 낌새를 알아챈다. 작은아이 옷 입히는 동안 네 남은 밥 먹으라 이른다. 큰아이는 아침에 먹다 남은 밥을 싹싹 비운다. 밥 먹자 할 때 먹으면 얼마나 예쁘니. 이제 두 아이는 신을 꿰고 마당에 선다. 작은아이는 벌써부터 수레 앞에서 알짱거린다. 큰아이는 얼른 수레에 타고 싶어 아버지를 자꾸 부른다.

 

- 서재도서관에 들러 책 갈무리를 조금 하고 나오는데, 건물 한쪽으로 푸른 잎사귀 가득 보인다. 어쩜 이곳은 한겨울에도 푸른 잎 가득하니. 그러나 자전거를 몰며 이웃마을 논 사잇길을 달리고 보니, 빈 논마다 푸른 잎사귀 보송보송 돋는다. 저 잎사귀를 맨발로 밟고 거닐면 느낌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풀잎 새로 푸르게 돋는 데마다 잘디잔 들꽃이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여다본다. 어라, 광대나물이 꽃을 피웠네. 여기에는 봄까지꽃도 피었네. 봄까지꽃 곁에는 별꽃이 나란히 보이네. 새봄을 가장 먼저 부르는 ‘봄 들꽃 세 가지’가 나란히 피었구나. 이월이 저물며 삼월로 넘어서는 길목에 온 논둑과 밭둑에 흐드러지는 봄 들꽃이 십이월 한복판에 이렇게 곳곳에 피다니. 너희는 추위를 잊었니. 너희는 추위를 견디면서 따순 햇살만 보면 피어날 수 있니. 너희를 늘 봄나물로 먹었는데, 이 한겨울에 너희를 겨울나물 삼아 뜯어먹어도 되겠니.

 

- 면소재지에 들어설 무렵,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잠든다. 앞으로 폭 엎드려 잠든다. 면소재지 어귀에는 어느 분 아들내미가 ‘미국 무슨 대학교’에 붙었다면서, 이를 기리는 걸개천이 큼직하게 나부낀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아무개 걸개천도 두 가지 걸린다. 이 조그마한 시골 면소재지에도 대통령 후보 걸개천이 걸리는구나. 고흥군 읍내에조차 대통령 후보 가운데 어느 한 사람조차 다녀가지 않은 듯한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모른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은 표를 더 모으려 할 사람이지, ‘사람 적게 살아가는’ 조그맣고 외진 시골마을 삶자락 따사로이 보듬을 만한 사람은 아직 아니라고 느낀다. 그래도 참 용하다 싶은 대목은, 대통령 후보라 하는 이들이 시골마을로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지만, 시골마을 투표율이 도시보다 훨씬 높다. 시골에 주소만 두고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부재자투표를 잘 안 해서 그렇지, 주소와 삶자락을 시골에 둔 사람 투표율은 아주 높으리라 느낀다.

 

- 바람이 따숩다. 구름이 예쁘다. 하늘이 곱다. 겨울빛 감도는 멧자락이 포근하다. 마을 들판이 고요하다. 지붕 낮은 시골집이 옹기종기 모인다. 봄꽃은 왜 이 겨울에 미리 피었을까 생각해 본다. 겨울에도 봄꽃처럼 맑은 넋 고이 건사하라는 이야기를 띄우는 길동무일까 하고 어림해 본다. 이 겨울날 찬바람만 생각하지 말고, 따순 넋과 고운 손길 스스로 곱다시 북돋우라는 이야기 건네는 길벗일까 하고 가늠해 본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

 

 

 

 

 

 

 

 

광대나물꽃

 

 

 

 

봄까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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