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마음

 


  고흥집을 이레 비우고, 여드레째 비로소 돌아온다. 여드레만에 돌아온 고흥집은 조용히 잘 있다. 다만, 택배 일꾼 두 사람이 책 상자를 마당에 덩그러니 놓고 간 바람에 빗물에 흠뻑 젖었다. 왜 처마 밑에 놓지 않았을까. 왜 비가 들이치는 대문 안쪽에 휙 던져 놓고 갔을까.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성가셨을까. 몇 미터 더 걸어가서 빗물 들이치지 않을 자리에 놓기가 힘들었을까.


  장인 어른이 짐차에 이런 짐 저런 짐 그득 실어 일산에서 고흥까지 열 시간 즈음 달렸다. 천안을 지나기까지 눈발이 퍼부어 쌓였고, 공주 들판을 지날 무렵 눈송이는 땅에 닿자마자 녹는다. 익산을 지나 임실 멧골을 지날 적에는 다시 눈발이 퍼부으며 쌓인다. 날줄이 낮더라도 멧골은 멧골이라 눈발이 드세다. 오수를 지나 구례로 접어드니 다시금 눈송이가 녹아 길이 덜 미끄럽다. 순천으로 들어서니 길은 여느 빗길과 같고, 벌교 지나 고흥군 어귀부터는 길이 가뿐하다.


  참말 고흥은 따스하구나, 겨울에도 포근하구나, 따뜻하고 아늑하게 지낼 만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작은아이는 신나게 놀다가 밤 열 시 사십 분 무렵 비로소 똥을 푸지게 눈다. 아침부터 길을 나서느라 차에서는 똥을 참아 주었고, 집에 닿아 이래저래 뛰놀면서 속을 다스려 똥을 누어 준다. 작은아이 밑을 씻기며 바지를 갈아입히고, 큰아이는 무릎에 누여 다독이며 재운다. 큰아이가 곯아떨어질 무렵 천천히 안아 잠자리로 옮긴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품에 안아 잠자리에 눕히고 곁에 나란히 누워 가만가만 자장노래 부른다. 먼 마실 마치고 돌아온 두 아이가 저희 집에서 느긋하게 잠든다. 겨울에도 따사로운 고흥집 잠을 잔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마당으로 내려선다. 늦은밤이 되니 고흥에도 진눈깨비 같은 눈발이 날린다. 가느다란 눈발은 땅에 닿자마자 거의 녹지만, 띄엄띄엄 논이랑 밭에 하얀 자국을 남긴다. 마당 평상에도 눈이 살짝 덮인다. 세 시, 작은아이가 쉬를 하며 깬 깊은 새벽에 기저귀랑 바지를 갈며 다시 마당으로 내려서 바깥을 내다보니, 구름 모두 걷혀 달빛과 별빛 초롱초롱 빛난다. 드문드문 흰구름 밤하늘 가로지른다. 밤빛 고운 고흥집으로 돌아왔구나. 너희 밤빛을 살뜰히 느낄 고흥집에서 여러 날만에 고요한 바람을 누리는구나. 동이 틀 때까지 얇고 하얀 눈이불 고스란히 남아 사진 몇 장 찍을 수 있기를 빈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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