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에 작은아이 다독이며

 


  작은아이가 꼭 깊은 밤에 응애 울면서 칭얼거린다. 잘 놀고 곯아떨어지면 밤오줌 누이기 수월하지 않은데, 스스로 쉬를 가리지 못하고 바지에 흠뻑 싸고 나면 이렇게 울곤 한다. 그렇다고 깊은 밤에 달게 잘 자는 아이를 부러 깨우거나 안고는 오줌그릇에 앉힐 수 없다. 작은아이 스스로 쉬 마렵다는 티를 내며 아버지를 깨워야 비로소 바지를 안 적시며 오줌을 가리면서 작은아이 스스로 개운하게 다시 잠들 수 있다.


  나는 워낙 따로 밤잠을 깊이 들지 않는다. 잠이 들면 내 나름대로 깊이 자지만, 옆에서 무언가 부르는 소리를 내면, 이 소리를 듣고 살며시 눈을 뜨곤 한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만, 신문배달 일을 하던 때, 작은 소리 하나에도 잠에서 깨어 ‘신문사 지국에 찾아드는 도둑’을 잡아야 하던 날을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곤 하다. 참말 신문사 지국에 뭘 훔칠 게 있는지 모른다만, 고작 300원짜리(내가 신문배달을 하던 때 신문 한 장 값) 신문 한 장 훔치려고 신문사 지국에 슬그머니 찾아드는 이웃 아저씨들이 있었다. 이들이 처음에는 신문만 훔친다지만, 나중에는 금고를 훔치거나 우리 가방을 훔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어쩌면 이무렵 이런 밤잠이 버릇이 되어 오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아이들 밤칭얼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건사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일찍부터 ‘아이 돌보는 아버지’가 되도록 내 매무새를 다스린 셈인지 모른다.


  옆지기 몸이 아주 튼튼하다거나 옆지기 마음이 무척 씩씩했다면 어떠했을까 헤아려 보곤 한다. 이때에는 옆지기가 아이 돌보는 나날을 그리 힘들게 여기지 않았을 테며, 아이 똥오줌 가리기라든지 빨래라든지 밥하기라든지 청소라든지 이것저것 기운차게 함께 했으리라 본다. 때로는 나한테 이래저래 잔소리도 늘어놓고 꾸지람을 하기도 했을 테지. 옆지기가 아픈 사람이기에, 나는 이제껏 제대로 모르거나 널리 돌아보지 않고 살던 ‘아이와 지내는 하루’라든지 ‘집일을 모두 맡아 건사하는 하루’를 실컷 누린다. 2008년 8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3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해째 아이들 똥오줌을 날마다 주물럭거린다. 날마다 아이들 똥옷을 서너 차례 빨래하고, 아이들 밑을 서너 차례 씻긴다.


  오늘 저녁에는 작은아이 똥바지를 벗기며 밑을 씻기다가 그만 내 웃옷에 작은아이 똥이 푸지게 묻는다. 어쩌겠나. 묻었는데. 먼저 작은아이 밑과 다리를 싹싹 씻고 닦아 새 바지 입힌 다음 내 웃옷을 물로 헹군다. 이런다고 똥내가 가시지 않으니 복복 비벼서 빨아야 할 텐데, 고흥 시골집 아닌 일산 옆지기 어버이 댁에 머물기에 그냥저냥 똥옷을 입고 산다. 뭐 그래도 즐거우니, 작은아이가 어제 적게 눈 똥을 오늘 몰아서 왕창 누어 잘했구나 잘했어 노래하며 등짝을 톡톡 쓰다듬는다.


  칭얼거리던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달빛을 바라본다. 자장노래 한 가락 뽑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작은아이가 어머니 품으로 파고든다. 조용조용 색색 다시 곱게 잠든다. 예쁜 밤이 고즈넉히 흐른다. 4345.1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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