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놀이와 마실
며칠째 밥을 안 하고 이불을 안 개며 청소할 일이 없다. 그러나 책을 편다든지 글을 쓸 틈은 도무지 안 난다. 아이들 쳐다보느라 바쁘다. 집에서는 이 일 저 일 끝없이 붙잡으면서 아이들 쳐다보느라 바쁘더라도 외려 틈틈이 책을 펴거나 글을 쓰는데, 바깥마실을 나오면 집안일에서는 홀가분해진다만, 홀가분해지는 몸과 마음으로 온통 아이들을 쳐다보아야 하기에,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책과 글을 만지작거리기는 수월하지 않다.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바깥마실이 못마땅한가? 아니다. 바깥마실은 바깥마실대로 뜻과 보람이 있다. 아이들을 더 쳐다보도록 이끄는 이 바깥마실은 ‘몸으로 읽는 책’으로 이끈다. 여느 날 여느 일에서는 누리지 못할 온갖 이야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맞아들이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아이들과 바깥마실을 하기 때문에, 택시도 얻어서 타면서 택시 일꾼이 누리는 고단한 삶을 들을 수 있다. 시골버스가 어떤 마을 사이를 돌고 돌아 읍내로 가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서울과 같이 커다란 물질문명 울타리에 자동차가 얼마나 많은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이 시멘트·아스팔트 쳇바퀴에서 겉차림에 마음을 기울이느라 속차림에는 마음을 못 기울이는 사람들이 더없이 많다고 다시금 느낀다.
시골에서 숲을 바라보고 숲을 느낄 때가 가장 즐겁다. 도시로 마실을 나와서 지낼 적에는 ‘우리 식구가 얼마나 즐겁고 환한 데에서 기쁨과 웃음을 받아먹고 살아가는가’를 뚜렷하게 깨닫는다. 우리 식구는 우리 식구대로 시골마을에서 예쁘게 살되,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는 이웃과 동무는 이들대로 예쁜 마음이 되어 예쁜 살림 꾸리도록 기운을 차리라고 가만히 빌어 본다. 저마다 씩씩하게 튼튼하게 사랑을 빛낼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겨울을 맞이해 찾아드는 차디찬 바람은 서로서로 더 어깨동무하고 더 따스히 손을 맞잡으며 더 아름다이 사랑을 빛내라는 뜻이라고 느낀다. 4345.1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