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 시집장가 앞둔 젊은이한테
집안일은 아름답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살리는 일이 집안일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집안일은 사내와 가시내가 반반으로 쪼개어 맡는다든지, 누가 조금 더 맡는다든지 할 일이 아닙니다. 사내와 가시내는 모든 집안일을 혼자 즐겁게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아이 두셋쯤 씩씩하게 보살피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 늙은 어버이를 알뜰히 돌보며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집안일은 힘들거나 고되거나 지겨운 일이 아닙니다. 집안일이 힘들거나 고되거나 지겹다고 느낀다면, 누군가 누구한테 억지로 이 일을 짐덩이처럼 얹어서 시키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며 하는 일이 집안일이요, 스스로 사랑과 꿈을 살찌우는 일이 집안일입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먹여살린 지난날을 돌이켜보셔요. 내 어버이는 슬프거나 고되거나 괴롭게 나를 먹여살리면서 돌보고 사랑했는가요.
내가 내 어버이 집에서 제금나서 혼자 살림을 보듬는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른바 ‘자취’를 하는 내 삶을 헤아려 보셔요. 자취를 하는 나는 밥짓기·빨래하기·청소하기뿐 아니라 모든 집안일을 혼자 씩씩하게 맡아야 합니다. 혼자 집안일을 씩씩하고 즐겁게 맡지 않으면, 내 자취방이나 자취집은 엉망진창이 되고, 내 마음자리와 사랑자리 또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아요. 그러니까,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마땅히 집안일을 스스로 씩씩하고 즐거우며 아름답게 건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집안일을 예쁘고 참다우며 해맑게 집안일을 물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담아 누리는 집안일을 가르치고 배울 우리들입니다. 믿음을 실어 나누는 집안일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길 우리들입니다. 꿈을 얹어 빛내는 집안일을 알뜰살뜰 여미며 하루를 눈부시게 아로새길 우리들입니다.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 집안일을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집안일을 합니다. 나는 하루 스물네 시간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나는 왜 스물네 시간 꼬박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바라볼까 하고 가만히 돌아보곤 합니다. 언제부터 이와 같은 삶이 되었을까 되돌아보곤 합니다. 잘 모릅니다만, 아니 굳이 따질 까닭은 없는데, 모든 일은 내 온 삶을 들일 때에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글을 쓰는 사람은 스물네 시간 글을 써요. 종이에 연필로 끄적일 때에만 글쓰기가 아니라, 마음속에 이야기를 그려 넣을 적에도 글쓰기예요. 종이책을 넘길 때에만 책읽기가 아니에요. 마음속에 이야기를 담고, 내 이웃과 옆지기 마음을 가만히 헤아릴 적에도 책읽기예요. 나무를 마주하며 나무읽기를 해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읽기를 해요.
집안일 스물네 시간 즐기면서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책읽기가 이루어져요. 아이들과 스물네 시간 복닥이면서 글쓰기뿐 아니라 그림그리기와 노래부르기와 책읽기와 춤추기가 이루어져요.
시집장가를 앞둔 젊은이들은 부디 집안일을 사랑하기를 빌어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어 보셔요. 오늘날 현대 물질문명 사회가 되었기에 ‘집안일’이나 ‘집일’이나 ‘집밖일’처럼 금을 그어 나누지만, 지난날 사람들은 그냥 ‘일’을 했어요. 더 되새기면, 그냥 일조차 아닌 그예 ‘삶’을 누렸어요. 삶을 누리는 한 자락에서 내 손으로 살그마니 빛내는 ‘집안일’이로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