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물결 책읽기

 


  옆지기 동생 시집잔치에 맞추어 시골집을 떠나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온 다음, 용산역에서 택시를 불러 일산으로 타고 들어온다. 저녁에 나서는 길이라 고속철도 한 가지밖에 달리 길이 없는데, 한밤에 서울에 닿는 고속철도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자거나 쉬도록 불을 꺼 주지 않는다. 훤히 밝은 기찻간에서 어른들은 어른 나름대로 눈을 감고 잔다지만, 아이들은 훤히 밝은 데에서 잘 생각이 없다. 여기저기 부산스레 뛰고 움직이면서 놀려 한다.


  용산역에서 내려 택시를 부르는데, 서울은 온통 아파트 물결에 자가용 물결이요 사람들 물결이다. 이 어마어마한 물결이 서울을 버티는 힘일 테지. 서울에서 살아가는 천만이라는 숫자와 서울을 드나드는 숱하게 많은 숫자는 이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힘이 되겠지. 자유로라는 길을 타고 한참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가용 물결이 수그러든다. 자정이 가까운 밤조차 서울 찻길에는 자가용이 흘러넘친다. 천만 사람이 천만 자가용을 굴릴까. 서울에는 자가용이 얼마나 많이 굴러다닐까. 자가용 곁에 짐차나 버스는 또 얼마나 많이 굴러다닐까.


  아파트 높은 벽이랑, 아파트 번들거리는 불빛이랑, 수많은 자가용 불빛은 깊은 밤 까만 하늘빛을 뿌옇게 바꾸어 놓는다. 이들은 낮에도 파란 하늘빛을 뿌옇게 바꾸어 놓는다. 밤을 밤처럼 누릴 수 없기에 낮을 낮처럼 누릴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이는 다른 자가용을 바라볼 뿐, 하늘이나 한강이나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다. 버스나 택시에 탄 사람 또한 다른 자가용에 눈길을 보낼 수 있을 뿐, 하늘이건 한강이건 나무이건 눈길을 보내기 어렵다. 땅밑을 오가는 전철을 타는 사람은 무엇을 보아야 할까. 온통 광고판으로 덕지덕지 어지러운 모습을 보아야 할까.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숲을 보면서 숲내음을 맡고 숲사랑을 누리며 숲꿈을 꾼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서울살이에 익숙하면서 어떤 내음을 맡고 어떤 사랑을 누리며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시골에도 서울에도 고운 내음이 감돌기를 빈다. 시골에도 서울에도 맑은 사랑이 싹트기를 빈다. 시골에도 서울에도 환한 꿈이 피어나기를 빈다. 4345.11.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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