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원

 


  옆지기 여동생이 12월 1일에 혼례잔치를 한다. 전남 고흥에서 경기 일산까지 머나먼 길을 가야 하기에 오늘 새벽에 길을 나서려 했는데, 옆지기랑 아이들 모두 어젯밤 해롱거리며 골골대기에, 오늘 새벽 기차표를 물린다. 시골집에서는 새벽부터 길을 나서고, 순천 기차역에서는 아홉 시 반 즈음 타는 기차인데, 인터넷으로 표를 물리니 400원씩 떼어 돌려준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이 있으니 시골집에서도 기차표를 미리 끊는다. 인터넷이 있기에 시골집에서도 기차표를 물린다. 인터넷이 없다면 기차역까지 가서 미리 끊어야 할 뿐 아니라, 차편이 있을까 없을까 모르는 채 기차역까지 가야 한다.


  고흥에서 보면, 날줄이 위쪽인 보성이나 장흥만 하더라도 눈발이 날린다고 할 만한 날씨라지만, 고흥은 눈은커녕 햇볕만 따사롭다. 포근한 바람이 불고 따순 구름이 흐른다. 해남 끝자락이나 강진 끝자락은 어떨까. 그곳도 고흥처럼 포근한 바람과 따순 구름 흐르는 맑은 날을 누리려나.


  기차표를 물리며 짐꾸리기도 안 한다. 짐꾸리기를 안 하며 살짝 멍한 채 새벽을 맞이하다가, 누런쌀을 씻어서 불리고 미역을 끊어서 불린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면서 밥을 새로 짓는다. 이듬날은 어찌 될까. 이듬날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아니면 모레에 길을 나서야 할까. 아니면 마음으로만 인사를 띄우고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조용히 머물까.


  마을에는 우리 집 아이들 노랫소리만 고즈넉히 울려퍼진다. 4345.11.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