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나비, 가을풀씨
아이들과 마을 들판을 걷는다. 나락을 모두 베고 마늘을 심은 자리에 풀약을 치는 어르신은 없다. 한갓지고 느긋하게 논둑에 앉기도 하고, 아이들은 논둑을 달리거나 고샅을 뛰놀기도 한다. 나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논둑에 앉는다. 틈틈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진 몇 장 찍는다. 아이들은 햇볕을 듬뿍 받으며 저희끼리 논다. 흙을 줍고 돌을 집는다. 도랑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누비는 멧새를 본다. 마을 할아버지 경운기 지나갈 적에 손을 흔든다.
책을 읽다가 나비를 만난다. 아직 날아다니는 나비가 꽤 있다. 이 나비들은 언제쯤 겨울잠을 자려나. 따스한 남녘마을에서는 겨울에도 나비가 잠을 안 자고 겨울나기를 하려나. 겨울에 몇 송이 피어나는 동백꽃은 나비한테 겨울밥이 되어 줄까.
논둑에서 흔들리는 풀씨를 본다. 용케 낫질을 안 받고 살아남은 풀포기가 저희 씨앗을 바람에 맡겨 여기저기로 날린다. 조용한 마을 고요한 들판이다. 이 가을날, 아이들 발자국 소리와 웃음꽃 소리와 까르르 노랫가락 소리가 저 멀리 천등산까지 퍼진다. (4345.1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