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안고서

 


  아이들을 안고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글쎄’라는 낱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글쎄’라는 말이 아니고는 무슨 말을 할 만한가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안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참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이들을 안든 업든 스스로 아무것이나 다 하며 살아간다면, 굳이 이것저것 생각할 까닭 없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안고 밥을 한다. 아이들을 안고 밥을 차리며, 아이들을 안고 밥을 먹인다. 아이들을 안고 똥기저귀를 빨다가는, 아이들을 안고 살살 달래며 자장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을 안고 그림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을 안고 내가 읽고픈 책을 읽기도 한다. 아이들을 안고 글을 쓴다. 아이들을 안고 전화를 안다. 아이들을 안고 마당에 빨래를 널고 걷고 갠다. 아이들을 안고 대문까지 나가서 택배를 받는다. 아이들을 안고 응가를 누며, 아이들을 안고 밤하늘 별을 바라본다.


  아이들을 안고, 아니 아이들을 안기 앞서 큰가방 여럿을 메고 지고 걸면서 아이들을 안는다. 얼추 삼사십 킬로그램쯤 되는 짐을 짊어진 채 아이들을 안고 마실을 다닌다. 아이들을 안고 저잣거리 마실을 한다. 아이들을 안고 군내버스에 탄다.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린다. 아이들을 안고 멧길을 오르내린다. 글쎄, 아이들을 안고서 못할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술을 마시고프면 아이들을 안고 마시면 된다. 다만, 아이들을 안고서 지내고 보면, 굳이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이들을 안고서 풀을 뜯을 만하고, 아이들을 안고서 꽃송이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면 즐겁다.


  이 밤에 큰아이 토닥이며 얼른 아픈 몸 나으라고 빌다가,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서 너도 얼른 나아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 씩씩하게 놀렴, 하고 속삭인다. (4345.11.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빨래순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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