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 사진을 찍는 까닭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5년 무렵, 집에서 굴러다니던 전자동 작은 사진기로 구름을 스무 장 남짓 처음 찍을 때, 사진찍기란 무엇인지 딱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무렵 그 사진기로 골목놀이 하는 동무들을 찍었으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동무들과 누리던 골목놀이는 ‘사진 한 장’으로조차 안 남았으나 내 몸과 마음에는 깊이 아로새겨졌어요. 종이에 남는 사진이 따로 없더라도 언제나 환한 그림으로 낱낱이 떠올리며 즐길 수 있어요.


  1998년에 후배한테서 빌린 사진기로 ‘내 사진’이라 할 사진을 처음으로 찍었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사진기를 두 차례 도둑맞고, 전철 짐칸에 사진기를 놓고 내린다든지, 사진기 가방을 전철 바닥에 깜빡 놓고 내린다든지, 택시에서 졸다가 그만 사진기 가방을 두고 내린다든지, 이러저러하면서 새 사진기를 자꾸자꾸 어렵사리 되사곤 했는데, 한 해 두 해 흐르고 흐르는 동안 ‘사진 찍는 까닭’을 따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찬찬히 돌아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사진찍기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늘 마음 깊이 아로새기면서 되뇌어야 하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는 사진을 왜 찍는가.


  나는 내 삶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나는 내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 삶을 즐기기에 사진을 찍고, 내 하루를 스스로 빛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예전에는 나도 ‘감동(感動)’이라는 한자말을 빌어 ‘사진 찍는 까닭’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 이 한자말은 안 씁니다. 왜냐하면, 국어사전에서 ‘감동’ 말뜻을 찾아보면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나와요. 곧, ‘내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감동’이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란, 스스로 ‘내 삶을 누리’는 일이에요.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삶 = 사진’인 셈이에요. 살아가기에 사진을 찍고, 살아가니까 사진을 읽는 셈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살아가기에 글을 쓰고, 살아가니까 글을 읽어요.


  스스로 마음이 즐거이 움직일 적에, 이 기쁜 느낌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꼭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눌 뜻은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이 즐거이 움직이면, 내 마음에는 즐거운 꿈과 사랑이 깃들어요. 즐거운 꿈과 사랑은 내 얼굴빛을 환하게 적십니다. 내 삶이 차근차근 거듭나요. 나를 마주하는 사람은 환하게 거듭나는 내 얼굴빛을 바라보며 즐거운 꿈과 사랑을 시나브로 받아먹습니다. 나는 나대로 내 고운 얼굴빛을 스스로 즐깁니다.


  ‘좋은 느낌’을 받기에 사진으로 찍어서 나누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좋은 느낌’은 그대로 좋은 느낌입니다. 나 스스로 ‘좋은 느낌’으로 살아가며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삶’을 즐겨요.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고 언제나 해맑게 다시 태어나요. 이때에 내 손에 사진기를 들면 사진찍기를 하고, 이때에 내 손에 연필이 있으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요.


  곧, 사진이란 늘 삶을 찍습니다. 글이란 언제나 삶을 씁니다. 그림이란 노상 삶을 그립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 까닭이라면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스스로 삶을 누리면서 즐겁게 빛내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삶을 누리지 못하거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삶을 빛내지 못할 적에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글도 못 씁니다. 그림도 못 그려요. 아이들한테 자장노래 한 가락조차 못 불러 주어요. 아이들과 맛나게 나눌 밥도 못 할 뿐더러, 아이들이 입을 고운 옷이 되도록 빨래하는 일조차 못 하고 말아요.


  삶이 즐거우면 어떠한 일이든 합니다. 삶이 즐겁지 못하면 어떠한 일도 못 합니다. 삶이 즐거우면 어떠한 사진이든 마음껏 누립니다. 삶이 즐겁지 못하면 아무런 사진도 못 찍습니다. 그러니까, 삶이 즐겁지 못한 사람이 손에 사진기를 쥔대서 ‘사진’을 찍지는 못해요. 사진기 단추는 신나게 누른달지라도 스스로 ‘마음속 즐거운 빛줄기’가 없으면 디지털파일이나 필름을 수없이 낳기는 할 터이나,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이야기는 태어나지 못해요. (4345.1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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