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팬클럽·공지영 팬카페

 


  누군가를 마음 깊이 섬기거나 모시는 일은 훌륭하리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섬기면서 스스로를 올바로 가다듬을 수 있고, 누군가를 마음 넓게 모시면서 스스로를 어여삐 다스릴 수 있어요. 그런데, 팬클럽이나 팬카페처럼 받아들이면 그만 스스로 수렁에 빠집니다.


  팬클럽을 이루거나 팬카페를 여는 일이 잘못일 수 없습니다. 다만, 팬클럽이나 팬카페가 되면서 스스로 잘잘못을 바라보지 못하고 말아요. 제 눈에 들보라는 말처럼, 눈꺼풀이 쓰이고 말아요.


  2012년 대통령 뽑는 자리에 나온 박근혜 님을 깊이 섬기면서, 박근혜 씨가 하는 일이나 읊는 말이라면 모두 받들거나 몽땅 우러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의자놀이》라는 책을 내놓고 ‘진보 의제’까지 건드리면서 더 널리 이름값 높이는 공지영 씨가 쓰는 글이나 내놓는 책이라면 모두 읽거나 몽땅 외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른바 ‘박근혜 팬클럽’과 ‘공지영 팬카페’입니다.


  누군가 박근혜 씨를 좋아하거나 섬기는 일이 잘못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면 좋아할 뿐입니다. 누군가 공지영 씨를 아끼거나 즐겨읽는 일이 허물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면 즐길 뿐입니다.


  박근혜 씨를 일부러 깎아내릴 까닭이 없고, 공지영 씨를 애써 나무랄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 그대로 바라보면서 숨결 그대로 맞아들이면 됩니다. 말과 넋과 삶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내 삶을 옳고 바르며 즐겁고 아름다이 추스를 수 있으면 됩니다.


  박근혜 씨는 ‘독재자 딸’이 아니라 박근혜 한 사람입니다. 공지영 씨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 작가 한 사람 공지영입니다. 정치밭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박근혜 씨라면, 정치밭에서 하는 일과 읊는 말을 살피면서 이이 매무새를 가늠할 노릇입니다. 글밭에서 글을 쓰겠다는 공지영 씨라면, 글밭에서 하는 일과 읊는 말을 살피면서 이이 몸가짐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팬클럽을 만들든 팬카페를 열든 ‘취향’이고 ‘자유’라 할 테지요. 그런데, 팬클럽과 팬카페 목소리에 묻혀 정작 ‘작고 낮은 여러’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팬클럽 목소리와 팬카페 글이 넘치면서 온누리 ‘작고 낮은 여러’ 사람들 얼굴과 몸뚱이가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따지고 보면, ‘리영희 팬클럽’이든 ‘이오덕 팬카페’이든 몹시 부질없습니다. 리영희를 읽는 이라면 리영희 님 넋과 얼을 내 넋과 얼이 거듭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뿐입니다. 이오덕을 읽는 이라면 이오덕 님 슬기와 깜냥을 내 슬기와 깜냥이 새로워지는 밑틀로 삼아야 할 뿐이에요.


  밭에서 풀을 뽑을 때에나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입니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일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재우거나 젖물리는 어버이가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힙니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줄을 세우거나 금을 그을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살피지 못하고 ‘박근혜 팬클럽 줄서기’를 한다든지(또는 ‘공지영 팬카페 금긋기’를 하는 이들은 스스로 이녁 가슴속에 깃든 빛줄기를 짓밟는 꼴입니다. 스스로 서야지, 남을 세울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나야지, 남을 빛낼 일이 아닙니다. 즐기지 않고 무리를 만드는 사람은 권력으로 치달아 독재자를 만듭니다.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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