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11.5.
: 갈대잎 자전거
- 졸린 작은아이를 달래며 재우려고 자전거를 태울까 생각한다. 작은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도톰한 겉옷을 입히고 두꺼운 바지를 갈아입힌다. 양말을 신긴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까무룩 고개를 떨군다. 아침부터 낮잠 없이 낮 두 시 남짓 하도록 개구지게 놀더니, 그만 앙앙 울다가 아버지 품에 안긴 채 까무룩 잠든다. 가만히 안아서 옆방으로 간다. 자리에 바로 눕히지는 않고 토닥토닥 노래하면서 기다린다. 살며시 무릎에 눕혀 본다. 아이가 꼼짝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잠자리에 살그마니 누인다. 이불을 덮는다. 가슴을 톡톡 쳐 준다.
-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나온다. 집에서 서재도서관으로 옮길 책을 꾸린다. 마을 어귀에 내놓을 쓰레기를 챙긴다. 마을 어귀까지는 큰아이가 달음박질로 따라온다. 큰아이도 적잖이 졸린 낌새이지만 더 뛰고 더 달리며 더 놀고픈 마음이로구나 싶다. 쓰레기 담은 봉지를 마을 어귀에 내려놓은 다음 큰아이를 태운다. 서재도서관으로 가서 가방에 꾸역꾸역 담은 책을 풀어놓는다. 곰팡이가 피는 책꽂이에 있는 오래된 책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아직 어찌저찌 손쓰기는 어려워 이만큼만 해 두기로 한다.
- 이제 들길을 달린다. 요즈음 우리 마을에도 상수도 공사를 한다고 시끌벅적거린다. 시골마을 어느 집이나 땅속을 파서 물을 뽑아 쓰는데 상수도 공사를 왜 하는지 아리송하다. 시골사람한테까지 물장사를 하려는 정부 생각일까. 상수도 공사는 외려 시골사람한테 도움 될 일이 없다. 수도물은 문화도 문명도 아닌 바보짓이라고 느낀다. 맑고 시원한 물이 네 철 내내 콸콸 흐르는데 왜 수도물을 써야 하는가.
- 넓은 논 옆으로 난 제법 넓은 도랑에서 흐드러지는 갈대밭 앞에 선다. 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갈대 줄기 하나 꺾어 달라고 한다. 그러나 도랑이 너무 깊고 가팔라 들어갈 수 없기에, 둑에서 허리를 숙여 꺾을 수 있는 작은 갈대 줄기 하나만 꺾는다. “얘는 왜 나한테 안녕 안녕 인사해? 얘는 왜 이렇게 이뻐?” 네가 갈대한테 인사를 하고, 네가 그야말로 이쁘잖니. 가을바람 듬뿍 쐬고는 집으로 호젓하게 돌아간다.
(최종규 . 2012 -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