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빈들

 


  지난해(2011년) 가을날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들판 가득한 나락빛을 보았고, 이내 들판 모두 텅 비는 호젓한 볏포기빛을 보았다. 이제 다시금 들판 가득한 나락빛을 보다가는 들판 모두 텅 비는 호젓한 볏포기빛을 본다.


  바람이 불어 들내음을 온 마을 골고루 흩뿌린다. 나는 어느새 들사람이 되고 들마음이 된다. 들을 바라보고 들을 생각한다. 시골에 내 땅이 있으면 내 논에는 겨울에 물을 대고는 얼음판이 되도록 할 테지. 겨울에 논을 새로 갈아 마늘을 심으면 돈푼 제법 만질 수 있다는데, 나로서는 돈푼보다 아이와 어른 누구나 마음껏 싱싱 달릴 논얼음판 꾸릴 수 있으면 기쁘리라 꿈꾼다.


  생각에 생각을 기울인다. 시골마다 아이들이 철철 넘치던 지난날에도 따순 남녘 시골에서도 논마다 마늘을 심었을까. 바지런히 마늘을 심는다 하더라도 한두 논배미는 마을을 안 심고 놀렸다가 물을 대어 얼음판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제아무리 먹고살기 빠듯하던 보리고개 근심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 마음껏 뛰놀 얼음판 하나쯤 넉넉히 마련하며 삶을 사랑하며 빛내지 않았을까.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