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글쓰기

 


  반달을 보며 들길을 걷는다. 가을바람이 차다. 가을비가 온 뒤에는 바람이 제법 불면서 차구나. 가을비는 추위를 재촉하는 비일까, 가을비는 이제 모두 겨울잠 들라면서 토닥토닥 재우는 비일까.


  저 먼 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본다. 바람은 지구별에만 부는 바람일는지, 달에서도 부는 바람일는지, 또 지구에서 멀리 보이는 뭇별에서도 부는 바람일는지 궁금하다. 지구처럼 봄이며 여름이며 가을이며 겨울이 다른 별에도 있을까. 같은 지구별이라지만, 봄과 가을을 누리지 못하는 데가 있고, 봄과 가을이 무척 짧은 데가 있다. 내내 더운바람 부는 곳이 있고, 늘 추운바람 부는 곳이 있다.


  달빛을 바라보며 걷다가 주머니에서 빈책을 꺼낸다. 볼펜을 눌러 몇 마디 끄적여 본다. 반달이 드리우는 빛을 받으면서도 글을 쓸 만하다. 마을에 전깃불빛이 없었을 지난날에는 이만 한 반달이 뜨더라도 모두들 시골자락 밤일을 할 만하구나 하고 느낀다. 옛날 시골사람들은 가을날 달빛 한 자락 고맙게 여기며 콩을 털고 벼를 털며 수수를 털었겠지. 반달에 비추는 따사로운 하얀 빛살을 누리면서 바느질을 하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짚신을 삼고 아이들 이불을 여미어 주었겠지. (4345.10.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