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우비
한가을로 접어든 뒤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가을비가 찾아온다. 그런데, 하늘 저쪽과 이쪽은 해가 환하게 비춘다. 아침햇살 노랗게 빛나는데, 요 한쪽에서는 빗줄기 쏴아 퍼붓는다.
뭔 일이니.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에 여우비라니. 그러나 겨울에도 여우비는 올 수 있겠지. 때로는 여우눈도 있는걸. 틀림없이 하늘에서는 밝게 따순 햇살이 노래하더라도 한쪽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기도 하잖아.
엊저녁 자정이 되도록 마을 한켠에서 벼베는 기계 구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오늘 가을비 쏟아질 줄 알고 밤새도록 벼를 베었구나 싶다. 가을걷이 바쁜 일손 하루쯤 쉬라는 비일까. 아무리 가을이라 하더라도 너무 가물지 말라며 살그마니 숲과 들을 적시는 비일까. 아이들은 빗소리를 듣고는 마당에서 긴신 신고 우산 들며 논다. (4345.10.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