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9) 추수
현실을 추수하자는 뜻은 전혀 아니다
《손석춘-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2012) 25쪽
‘현실(現實)’이라는 낱말은 따로 다듬을 까닭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흐름을 살피며 ‘오늘’이라 적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라든지 ‘어떤 틀’로 적을 수 있어요. ‘이 모습’이나 ‘오늘날 모습’이나 ‘오늘날 흐름’으로 적어도 돼요. ‘이 같은 삶’이라 적을 수도 있어요. ‘전(全)혀’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손질합니다.
보기글에 나타난 ‘추수’는 ‘追隨’를 가리키고, “뒤쫓아 따르다”를 뜻합니다. ‘가을걷이’를 가리키는 한자말 ‘秋收’도, ‘가을물’을 가리키는 한자말 ‘秋水’도 아니에요. 앞날 일을 미리 헤아려서 안다는 ‘推數’라든지, 더럽거나 보기 안 좋은 손을 가리키는 한자말 ‘醜手’도 아닙니다.
한자말 ‘追隨’ 뜻풀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1) 뒤쫓아 따름 (2) = 추축”이라 나옵니다. ‘추축(追逐)’을 다시 찾아보면, “(1) 쫓아 버림 (2) 친구끼리 서로 오가며 사귐 (3) 남의 뒤를 쫓아 따름”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런데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추축’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사람이 참말 있을까요. 이 한자말을 누군가 쓴다면 누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현실을 추수하자는
→ 오늘을 그대로 좇자는
→ 어떤 틀을 따르자는
→ 다른 사람을 따라가자는
→ 흐르는 대로 두자는
…
“현실을 추수하자는”처럼 적는 글이나 읊는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옳고 바르게 알아들을 만할까요. 이처럼 말해야 할 까닭이 따로 있을는지요. 이렇게 글을 쓰지 않고서는 글쓴이 넋을 나타낼 수 없을는지요.
한자말을 쓰는 일도 자유이고, 영어를 쓰는 일도 자유입니다. 다만, 글쓴이 혼자로서는 자유이지만, 이처럼 자유에 따라 펼치는 말글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널리 나눌 수 없거나 두루 나누기 힘들다면,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우리는 말을 왜 하나요. 우리는 글을 왜 쓰나요. 내 동무하고는 어떤 말을 주고받을 때에 즐거울까요. 내 이웃이랑 어떤 글을 나눌 때에 웃음꽃을 터뜨릴 만할까요. (4345.10.13.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러한 삶을 그대로 따르자는 뜻은 조금도 아니다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