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의 아이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그림책 4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심현경 그림, 이상교 엮음 / 안그라픽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이 하느님인 줄 안다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9] 셀마 라게를뢰프·심현경, 《트롤의 아이》(이상의날개,2007)

 


  아이들은 하느님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은 누구나 하느님을 돌보는 셈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아이로 살다가 어른이 된 만큼, 나부터 하느님이요 내 어버이는 하느님인 나를 돌보며 살아온 셈입니다.


  ‘아이들은 하늘이다’라든지 ‘아이들 맑은 눈빛은 하느님이다’라든지 ‘아이들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라든지 같은 말을 나도 어릴 적부터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하느님이라 말하는 어른들 가운데 나를 참말 하느님처럼 고이 섬기려는 어른은 왜 없을까’ 하고 궁금하곤 했습니다. 쉽게 때리고, 쉽게 꾸짖으며, 쉽게 다그치는데다가, 쉽게 소리를 질러요. 심부름이 아닌 고된 일을 시키고, 끔찍한 숙제와 체벌을 내리며, 제식훈련과 군사훈련까지 시켜요. 참말 하느님한테 이럴 수 있을까요. 참말 하느님한테 꾸중을 하면서 시험공부만 시킬 수 있을까요. 참말 하느님한테 입시지옥에 빠지라고 내몰 수 있을까요. 참말 하느님한테 영어지옥에 빠져 갓난쟁이 때부터 영어 노래에 영어 영화에 길들여지도록 내몰 수 있을까요.


  나는 어릴 적부터 ‘자동차’가 퍽 못마땅했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에 자동차가 많지 않아서 홀가분하게 놀기도 했지만, 나날이 자동차가 늘고 자동차 소리가 시끄러운데다가 자동차가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니까, ‘자동차는 어린이한테 가장 나쁜 녀석’이 되겠다고 느꼈어요.


  자동차는 골목길 아무 데나 섭니다. 우리 놀이터에 섭니다. 우리가 땅바닥에 금을 긋고 놀이를 하던 자리에 버젓이 서서는 “애들은 저리 가라!” 하는 소리마저 듣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어른들은 어린 우리더러 “길에서 뭐 하니!”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1980년대에도 아이들 놀이터인 골목이요, 1970년대나 1960년대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누구한테나 일터요 놀이터인 골목이며, 1950년대나 1940년대를 헤아리면 나라안 골골샅샅 모두 어른과 아이 누구한테나 호젓한 쉼터요 삶터인 땅인데, 고작 쉰 해나 예순 해만에 모든 땅덩이를 자동차한테 내준 꼴입니다. 하느님인 아이들이 놀 자리가 없고, 하느님 마음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설 자리가 없어요.


.. 털복숭이 엄마 트롤이 아기를 등에 업고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때 건너편에서 말을 타고 오는 농부 부부가 보였어요. ‘사람의 아기도 우리 아기만큼 예쁜지 보고 싶은걸.’ ..  (2쪽)


  어른인 나는 스스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내 아이들부터 하느님이요, 이웃 아이들 또한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아니,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으면 그만 잊고 마는구나 싶어, 마음을 가만히 다스립니다. 아이들이 하느님이라고 여기는 마음이란, 나 또한 언제나 하느님이요 나부터 아름다운 하느님인 만큼 내 삶부터 참으로 하느님다운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건사하자는 마음입니다.


  내가 나를 참답게 아끼고 보살필 수 있을 때에, 내 아이들을 참답게 아끼고 보살필 수 있다고 느껴요. 내가 나조차 참답게 아끼거나 보살피지 못하면서, 내 아이들을 참답게 아끼거나 보살필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을 누릴 때에 사랑스러운 눈빛이 되고, 스스로 꿈을 이룰 때에 꿈꾸는 눈망울이 돼요.


  어버이인 나부터 나무 한 그루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어야 아이들 또한 나무 한 그루 너그러이 어깨동무할 수 있다고 느껴요. 내가 나무 한 그루 업신여긴다든지 아랑곳하지 않는다든지 포근하게 쓰다듬지 못하면서 아이들더러 나무사랑 숲사랑 삶사랑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느껴요. 하느님다운 눈길로 하느님다운 손길을 펼쳐요. 하느님다운 마음씨로 하느님다운 사랑씨를 한 올 두 올 퍼뜨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하느님답게 넉넉하게 이웃을 얼싸안고, 하느님답게 즐거이 웃는 낯으로 지구별을 아낄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러니까, 나는 어린 날부터 ‘아이들은 하늘이다’ 하는 말에 한 마디를 붙이고 싶었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곧 사람들 누구나 하늘이라고, ‘사람은 모두 하늘이다’ 하고 말하고 싶었어요.


.. “그런데 저 아기는 어쩌죠? 그냥 두면 사나운 짐승들이 해치고 말 거예요.” “그렇다면 저 괴물의 아기를 데려가겠다는 거요?” 농부는 트롤의 아기를 데려가는 게 아주 못마땅했어요. 하지만 아내를 달래려면 트롤의 아기라도 집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  (10∼11쪽)


  내 마음속 하느님이 나를 늘 지켜봅니다. 아이들 마음속 하느님이 나를 언제나 바라봅니다. 내 마음속 하느님이 노상 아이들을 살펴봅니다. 아이들 마음속 하느님이 한결같이 아이들 스스로를 톺아봅니다.


  서로서로 하늘사람입니다. 택시를 모는 일꾼도, 버스를 모는 일꾼도 하늘사람입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도 고기를 낚는 일꾼도 하늘사람입니다. 국회의원도 군수도 면사무소 일꾼도 하늘사람입니다. 대통령도 공무원도 회사원도 하늘사람입니다. 청소부도 이주노동자도 하늘사람입니다. 하늘사람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평화란 서로서로 하늘사람인 줄 느끼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이란 서로서로 하늘사람인 줄 깨닫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 금긋기나 편가르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정치권력으로 다툴 사람이 아니라, 삶을 사랑할 사람입니다. 경제권력을 누릴 사람이 아니라, 삶을 누릴 사람입니다. 문화권력을 뽐낼 사람이 아니라, 삶을 꽃피울 사람입니다.


  1등이냐 2등이냐, 수냐 우냐, A냐 B냐, 하는 금긋기란 덧없습니다.


  아이들은 아름답습니다. 어른들도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아이들 마음속 사랑이 어여쁩니다. 어른들 가슴속 사랑도 아리땁습니다. 사름들 마음자리 사랑이란 그지없이 예뻐요.


  다툴 까닭이 없어요. 말싸움이든 말꼬리이든 부질없어요.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삶을 날마다 즐겁게 열어젖힐 사람이에요. 저마다 선 자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꿈을 헤아릴 사람이에요. 오늘을 신나게 누리면서 하루하루 고운 열매를 즐길 사람이에요.


.. “네게서 탄 냄새가 나는구나.” “그야 당연하지요. 아빠가 트롤의 아이를 불 속에 집어 던졌을 때 트롤도 저를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거든요. 그때 엄마가 트롤을 구해 내지 않았더라면 저는 불에 타 죽고 말았을 거예요. 아빠가 트롤의 아이를 떨어뜨렸을 때 트롤도 저를 떨어뜨렸고, 엄마가 트롤의 아이에게 개구리와 거미를 주었을 때 트롤도 제게 버터 바른 빵을 주었어요.” ..  (32쪽)


  셀마 라게를뢰프 님 글에 심현경 님이 그림을 붙인 그림책 《트롤의 아이》(이상의날개,2007)를 읽습니다. ‘어머니 트롤’은 ‘어머니 사람’이 낳은 아기가 이녁 아기보다 예쁘장해 보인다면서 바꿔치기를 하는데, ‘아버지 사람’이 ‘아기 트롤’한테 하는 짓을 고스란히 ‘아기 사람’한테 합니다. ‘아버지 사람’이 ‘아기 트롤’을 윽박지른다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하거나 불구덩이에 던져 넣어 죽이려 하면, ‘어머니 트롤’은 이녁이 바꿔치기한 ‘아기 사람’한테 똑같은 짓을 해요. 이와 함께, ‘어머니 사람’이 ‘아기 트롤’한테 트롤이 좋아하는 밥을 마련해서 주고, ‘아기 트롤’도 ‘아기 사람’하고 똑같이 아끼며 사랑하고 돌볼 적에는 ‘어머니 트롤’도 ‘아기 사람’한테 고운 사랑을 나누어 줘요.


  그렇지만, ‘어머니 사람’도 ‘아버지 사람’도 당신들 ‘아기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되었는가를 모릅니다. ‘어머니 사람’은 당신 아기를 빼앗겼어도 ‘아기 트롤’을 똑같이 사랑스러운 숨결로 여겨 돌보지만, ‘아버지 사람’은 온통 미움과 시샘과 슬픔과 골부림으로 ‘아기 트롤’을 모질게 굴 뿐 아니라 ‘어머니 사람’하고 헤어지기까지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하느님이듯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이요, 모든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가 하느님입니다. 모든 목숨은 하나요, 모든 숨결 또한 하나입니다. ‘아기 사람’한테만 잘 하고 ‘아기 트롤’한테는 모질게 할 수 없어요. 모두가 하느님이니 모두한테 똑같이 사랑을 나눌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아버지 사람’은 당신 아기한테서 하느님을 못 볼까요. 당신 옆지기한테서, 또 ‘아기 트롤’한테서, 무엇보다 ‘아버지 사람’인 당신 스스로한테서 하느님을 못 볼까요.


  아이들이 하느님인 줄 안다면, 어른인 나 또한 하느님인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하느님으로 섬기려 한다면, 어른인 내 삶이 날마다 하느님 삶과 같도록 다스리면서 일구어야 합니다.


  예배당을 큼직하게 지어서 성경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른대서 하느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 스스로 이녁 마음속 하느님을 느끼며 사랑할 수 있어야 좋아합니다. (4345.10.7.해.ㅎㄲㅅㄱ)

 


― 트롤의 아이 (셀마 라게를뢰프 글,심현경 그림,이상교 엮음,이상의날개 펴냄,2007.5.2./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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