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빨래

 


  한가위를 맞이한 아침부터 부산스레 일손을 놀린다. 차례상을 어머니와 함께 살피고, 요모조모 바지런히 일손을 거든다. 큰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 “나도 하고 싶어.” 하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하는 일손을 돕고 싶다 말한다. 큰아이더러 대추를 쌓아 보라고 시킨다. 다른 쌓을거리를 아이한테 맡겨 본다. 큰아이는 한 살 두 살 먹을 적마다 이런저런 일거리를 즐겁게 맡아 주리라 느낀다. 밖에 나와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이런저런 집일을 으레 지켜보고 으레 한손 거들곤 하니까, 즐겁게 놀이 삼아서 아이 삶을 빛내리라 느낀다.


  차례를 다 마치자마자 작은아이가 응애 하고 운다. 어쩜 이렇게 다 마치자마자 울까. 차례를 올리는 동안 조용하기도 했지만, 차례를 함께 지켜보았어도 좋았으리라 싶은데,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한가위나 설은 많으니까, 올 한가위에는 새근새근 달게 자며 맞이했어도 좋으리라 느낀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난 작은아이는 똥도 누고 엄마젖도 물고 오줌도 누고 온갖 치레를 한다. 나는 차례상을 치우면서 밥상으로 바꾸는 일을 함께한다. 한쪽에서는 이것저것 치우고, 한쪽에서는 요모조모 차린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빈그릇 치우고 이래저래 움직이는데,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저마다 한숨을 돌리며 커피를 마신다든지 짐을 꾸린다든지 할 적에, 두 아이는 고모 따라 어디론가 놀러 갔고,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아침나절 작은아이가 내놓은 똥바지 똥기저귀가 떠오른다. 나어린 ‘아이들 고모’가 머리를 감으며 내놓은 손닦개도 여러 장 있다. 빨래그릇에 빨래감 꽤 쌓였다. 빨래기계를 돌릴까 싶다가, 나중에 할머니더러 돌리시라 하고, 작은아이 똥옷 빨래 몇 점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똥옷을 빨다 보니 다른 옷가지도 한두 점 더 빨래할까 싶다. 다른 옷가지 한두 점을 더 빨래하다 보니 이 빨래 저 빨래를 더 해야지 싶고, 그예 모든 빨래를 다 해낸다. 수북하게 쌓여 엄두가 안 나던 빨래였으나, 한 점 두 점 하고 보니 훌쩍 사라진다.


  빨래대를 바깥에 내놓는다. 빨래를 하나하나 넌다. 나는 홀로 한가위 빨래를 즐긴다. 햇살아, 햇살아, 한가위 햇살아, 이 빨래들한테 네 고운 볕살을 살그마니 나누어 주렴. 따스한 가을볕 듬뿍 나누어 주면서 시골자락 찾아온 모든 이들한테 네 너른 사랑을 일깨워 주렴. (4345.10.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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