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날에 맞추어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가 나왔습니다.
책방에는 이제 막 배본이 되었고,
책방에 주문하시는 분들은
한가위 연휴가 끝나면 구경하실 수 있어요.
즐겁게 장만해서!
예쁘게 읽어 주셔요!
실물을 보면 참 예쁘답니다~

머리말을 옮겨 놓습니다.
머리말
〈교수신문〉은 해마다 새 ‘사자성어’를 하나씩 내놓습니다. 이른바 “올해의 사자성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교수신문〉이기 때문에 이 나라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어 빚거나 찾는 새 ‘사자성어’입니다. 그런데, 대학 교수이든 지식인이든 기자이든,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사자성어’는 뽑을 줄 알지만, 막상 새로운 ‘한겨레 말글’은 빚을 줄 모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알차고 아름다이 빚는 길을 열지 않습니다. “올해를 빛낼 한국말”을 빚어 널리 알리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책은 ‘한국말로 예쁘고 즐거이 꾸리는 빛나는 삶’을 생각하고 싶은 꿈을 담으려 합니다. 한국사람이기에 쓰는 한국말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니까 쓰는 한국말이에요. 껍데기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는 없으나 겉차림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내 넋을 살찌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부터 빛나고 아름다운 말이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담는 줄거리가 빛나는 말이면서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을 테지만,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영어이지 한국말이 아니거든요. 영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으나, 영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영어 가운데 ‘한글’이나 ‘김치’ 같은 낱말이 스며들 수 있어도, 영어는 영어여야지 한국말이 되지 않고, 될 수조차 없어요.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쓸 한국말은 뿌리부터 잎사귀와 꽃과 열매까지 싱그러이 빛나는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살던 붙박이가 쓰는 한국말이든, 한국을 새로운 고향마을로 삼는 이주노동자이든, 한국에서 원어민강사 일을 하러 찾아온 서양사람이든, 한국땅에서 지내며 한국사람이랑(또는 한국사람이 되어) 쓸 한국말이란, 겉과 속이 하나되는 가장 아름다우며 빛나는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는 한국말로 옮겨야 합니다. 한국말로 번역해서 쓰는 영어여야 합니다. ‘럭셔리’뿐 아니라 ‘바이바이’ 같은 영어도 한국말로 옮겨서 써야 합니다. “하우 아 유?”나 “굿나잇!” 같은 영어는 한국말로 옮겨서 써야 합니다. 때로는 재미로 삼거나 놀이로 삼아 영어를 쓸 수 있어요. 때로는 학문이나 학식에 따라 한자말을 쓰기도 할 테지요. 그렇지만, 나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또는 한국사람이랑 벗을 사귀며) 쓸 한국말이라면, 알맹이와 겉모습이 맑고 밝게 빛나는 한국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북 칼럼니스트’ 같은 영어는 적어도 ‘도서평론가’쯤으로는 한 차례 옮겨야 하고, 더 생각을 기울일 수 있다면 ‘책 얘기꾼’으로 옮길 수 있어요. ‘책 얘기꾼’이 이모저모 어울리지 않거나 어설프다고 느끼면, 이보다 낫거나 예쁘거나 좋거나 어울릴 만한 새 한국말을 빚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라는 이름으로 사자성어를 한국말로 옮기려 합니다. 깊이 살피지 않고 쓰는 중국말이 아닌, 깊이 살피면서 쓰는 한국말을 찾아보려 합니다. 지식을 내세우거나 학식을 뽐내는 중국 한자말이나 중국 옛말이 아닌, 널리 사랑하며 고루 아끼는 한겨레 말글이나 한겨레 새말을 갈고닦고 싶어요.
누구보다 한국사람인 나부터 참답고 착하며 아름답게 한국말을 쓰고 싶습니다. 한국이랑 이웃한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네팔이나 미국이나 멕시코나 칠레나 프랑스나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찾아와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 할 때에, 가장 빛나며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전남 고흥 동백마을 시골자락에서 풀과 해와 별과 나무를 누리는 우리 집 아이들이 언제나 즐거이 맞아들일 한국말을 곱게 보살피고 싶습니다.
2012년 10월 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