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누리는 마음

 


  아침이나 낮에 아이들과 마을길 걷는 일이 즐겁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살을 쬐며 풀잎 나부끼는 소리가 좋구나 싶어요. 저녁이 되어 어스름이 깔릴 무렵 아이들과 천천히 마을길 걷는 일도 즐겁습니다. 따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길을 걷다가 개똥벌레를 만납니다. 개똥벌레는 예부터 이곳에서 살았으니 저녁마실을 하며 만날 텐데, 개똥벌레가 살아가는 곳이기에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이 마을에서 호젓하게 살아갈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보면, 개똥벌레가 살아갈 만하지 못한 터라면,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그닥 살아갈 만하지 못한 데가 아니랴 싶어요.


  땅강아지를 만납니다.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봅니다. 흙사마귀랑 풀사마귀를 봅니다. 아주 빨간 고추잠자리를 봅니다. 말잠자리며 실잠자리를 보고, 풀개구리와 미꾸라지를 봅니다. 내가 바라보는 숨결이란 내가 생각하는 목숨결입니다. 내가 마주하는 이웃이란 내가 사랑하는 꿈결입니다.


  옆지기가 곧잘 “내가 처음부터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면” 하고 읊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옆지기는 아마 옛날 삶으로는 시골에서 태어났겠지요. 오늘 삶에서는 도시에서 태어났겠지요. 나도 아마 옛날 삶으로는 시골에서 태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나도 오늘 삶에서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집 큰아이도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작은아이는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을 누립니다. 시골마을 감싸는 별빛과 바람과 어둠과 달무리를 누립니다. 저마다 무엇을 누리느냐에 따라 넋과 삶이 달라지겠지요. 스스로 무엇을 받아안느냐에 따라 꿈과 사랑이 달라지겠지요. (4345.9.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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