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 나서기 앞서

 


  새벽부터 멀리 길을 나서야 한다. 순천 기차역에서 아침 여덟 시 오십사 분 기차를 타야 하기에, 집에서는 다섯 시 반에 자전거를 몰고 읍내로 가려 한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는 아침 일곱 시 오 분에 있다. 이 버스를 타면 읍내에서 순천으로 가는 버스를 일곱 시 오십 분 차로 타니까, 기차 때에 맞추지 못한다. 자전거를 몰아 읍내에서 여섯 시 사십 분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경기도 파주까지 혼자 다녀오는 길이기에 자전거를 탄다. 혼자 길을 나서는 만큼,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잘 돌보면서 살림을 건사하기를 바라면서 미리 이것저것 챙긴다. 태풍이 지나가느라 제대로 못한 빨래를 몽땅 해서 넌다. 잠자는 방 깔개를 말리고, 이불도 모두 해바라기를 시키며, 방바닥을 말끔히 훔친다. 이듬날 아침에 먹을 밥을 저녁에 해 둔다. 설거지를 마무리짓고, 밥찌꺼기를 치운다. 안 갠 빨래를 낱낱이 개서 제자리에 두고, 내 짐을 꾸린다.


  새벽 일찍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며 가야 하니까, 일찍 잠들어야 하리라 생각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딱히 하지도 못하겠다. 드러누웠다가 일어나고, 또 무엇을 더 해야 하나 싶어 이것저것 살핀다.


  바람이 잠든 저녁은 고요하다. 풀벌레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바람소리는 조금도 없다. 두 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들이 넓게 자리를 차지하기에 내가 누울 자리는 없다. 나는 옆방에 깔개를 깔고 누워야지. (4345.9.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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