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멈출 때 풀빛 그림 아이 32
샬롯 졸로토 지음, 스테파노 비탈레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겨울과 봄은 한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0] 샬로트 졸로토·스테파노 비탈레, 《바람이 멈출 때》(풀빛,2001)

 

 

  바람이 멈출 때에 한국전력 일꾼이 와서 전기를 잇는다고 합니다. 제주섬 지나 전라남도에 닿은 바람은 벌써 많이 무디어졌습니다. 바람이 아직 드세다고요? 아니에요. 바람은 조금도 드세지 않아요. 우리들 마음이 ‘바람이 드세구나.’ 하고 생각을 굳혔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나도 문득 ‘이번 바람은 조금 드센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던 새벽 즈음, 우리 집 시멘트블록담 한쪽이 쿵 하고 무너집니다.


.. 엄마가 창 밖을 가리켰어요. 저기 배나무 뒤,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희미한 은빛 달이 보였어요. “밤은 달과 별, 그리고 어둠과 함께 너를 위해 꿈을 준비하고 있단다.” ..  (6쪽)


  바람은 언제나 붑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바람은 붑니다. 이곳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내뿜은 배기가스를 바람이 저곳으로 옮깁니다. 저곳에서 흐드러진 숲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숨을 바람은 이곳으로 옮깁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쌓이는 돈이 저곳으로는 흐르지 못하는군요. 이곳에서 넘치는 졸업장과 자격증이 저곳으로는 흐르지 못하는군요. 이곳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넘쳐요. 도시이니까 사람이 많다지만, 도시를 떠나 삶터와 삶자리로 헤아릴 때에는 어쩐지 스스로 옥죄며 이웃까지 얽매는 굴레는 아닌가요.


.. 아이가 침대에 눕자, 엄마가 곁에 앉았습니다. “바람이 그치면 바람은 어디로 가나요?” 아이가 물었어요. “어딘가 다른 곳으로 불어가, 나무들을 춤추게 하지.” ..  (10쪽)

 

 


  바람은 붑니다. 며칠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멎습니다. 며칠 바람이 멎습니다. 나는 이 바람을 두 팔 벌려 반깁니다. 싱싱 부는 바람은 내 온몸을 흐르는 땀을 말끔히 말립니다. 고요히 잠든 바람은 내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흐르게 합니다.


  바람아, 바람아, 너는 어디에서 비롯했니? 나한테서 처음 생기고는 이렇게 지구별 한 바퀴 돌며 아주 크게 부풀었니?


  하늘이 온통 하얗구나. 바람아, 네가 몰고 온 구름이니? 구름 따라 바람이 함께 마실을 다니니?


  나무들이 파라라 촤라라 춤을 추는구나. 시멘트로 만든 블록 담벼락이 무너지는구나. 들판을 가득 채운 볏포기가 누렇게 익으려는 알곡을 달고는 이리저리 눕는구나. 이런 바람 사이 어디에서나 풀벌레가 노래하는구나.


.. “나뭇잎은 단풍이 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땅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나무와 새로운 잎이 나도록 도와주지.” ..  (20쪽)

 

 


  바람아, 너는 네 소리를 듣니? 바람소리는 내 귀에만 들릴까? 바람아, 너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니? 제비 노랫소리나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니?


  우리 집 뒤꼍 감나무에는 이제 감알 하나 남았구나. 저 한 알을 남기고 다른 감알 몽땅 떨구었구나. 이웃집 감나무도 미처 못 익은 감알 수십 수백 알이 길바닥과 밭뙈기에 잔뜩 떨어졌구나. 감잎도 떨어지네. 나뭇가지도 꺾이네. 뒤꼍 우리 집 뽕나무는 그예 뿌리가 뽑혔네.


  그런데 참 놀랍게도, 너 바람은 꽤 단단하다 싶은 시멘트블록담은 와르르 무너뜨리면서, 부추풀 하얀 꽃잎은 건드리지 못하네. 너 바람이 그토록 드세게 불어도 부추꽃 하얀 잎사귀는 예쁘디예쁘게 빛나는구나. 눕지 않으려고 하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는, 춤추지 않으려고 하는, 이처럼 얼핏 억세거나 단단해 보이는 것이라면 가벼이 넘어뜨리거나 꺾고, 살랑살랑 눕거나 한들한들 흔들리거나 홀가분히 춤추는 것이라면 나란히 손 잡고 예쁜 웃음을 나누니?


.. “겨울이 끝나면요……?” 아이가 물었어요. “눈이 녹고, 새들이 돌아와 봄이 시작되지.” 엄마가 말했어요. 아이는 생긋이 웃었어요 ..  (24쪽)


  나는 네 모습을 본다. 나는 네 빛깔을 느낀다. 나는 네 내음을 맡고 네 소리를 들으며, 네 사랑과 꿈이 어떻게 자라나며 고이 흐드러지는가를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서 태어난 너, 바람 한 점이 지구별 골골샅샅 돌면서 능금나무를 만났고 고속도로를 만났으며 도라지꽃이랑 석유시추선을 만났겠지. 아이들 머리카락을 간질이다가 기관총 어깨에 멘 군인들 눈썹을 스치며 이곳으로 온 너 바람아, 서로 좋은 꿈 생각하면서 한숨 자자. (4345.8.28.불.ㅎㄲㅅㄱ)

 


― 바람이 멈출 때 (샬로트 졸로토 글,스테파노 비탈레 그림,김경연 옮김,풀빛 펴냄,2001.1.1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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