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책읽기
뭉게구름 가득하던 파란 하늘에 매지구름이 조금씩 생긴다. 이윽고 해가 자취를 감추고 빗방울이 하나둘 듣는다. 무더운 날을 식히는 소나기 쏴아아 내린다. 마실을 나온 우리 식구는 아직 집에 닿지 않았다. 따사로운 여름 햇살 받으며 바짝바짝 마르길 바라던 깔개며 이불이며 빨래며 몽땅 젖는다. 매지구름이랑 뭉게구름 모두 지나가고 하늘은 파란 빛깔로 돌아온다. 그러나 빗방울은 멎지 않는다. 빗방울이 멎어야 소나기에 젖은 빨래를 다시 마당으로 내놓을 텐데, 빗줄기는 가늘어져도 그예 흩뿌린다.
한여름 후끈후끈 타오르던 날씨를 얼마쯤 식혀 줄까. 들판과 숲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단물을 받아마셨을까.
비를 맞은 이불은 저녁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다. 솜방석도 폭삭 젖어 마르지 않는다. 하늘에 대고 골을 부린들 젖은 옷가지가 다시 마르자면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오래 비춰야 한다. 하루를 보내고 이듬날 말려야겠지. 이듬날 찾아올 햇살을 기다려야겠지.
밤이 된다.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아이들을 여러 차례 되씻긴다. 옷을 자꾸 갈아입히고 새 빨래는 꾸준히 나온다. 나도 새로 씻으며 새 빨래를 한다. 낮에 말리지 못한 빨래는 부엌 창가로 들인다. 새로 한 빨래는 부엌으로 들인 빨래대에 걸친다.
내 어린 날 소나기는 으레 찾아왔고, 여우비는 흔히 내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소나기와 여우비를 만났다. 소나기를 만나 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쫄딱 젖기 일쑤였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는 젖은 옷과 몸과 머리를 곧 말려 주었다. 여우비를 올려다보며 공놀이를 했고, 운동회 연습을 했다. (4345.8.17.쇠.ㅎㄲㅅㄱ)